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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언급했던 것처럼 저는 작은 마을에서 관계 망하는 이야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얼핏 그러한 상황을 그리는 듯 했던 영화는 순간 톤을 바꿔 이 작은 마을의 토착인들이 어떻게 마을을 망치기 시작한 외지인들에 맞서는지를, 혹은 이 어리석고 젊은 백인 남성들이 어떻게 이 작은 마을의 관습에 얽매인 중년 남성들에게 당할 수 밖에 없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성과 아이들은 당연하리만큼 무시당하고 이용되며 수동적이고 얄팍한 케릭터로 남게 되지요. 가능한 배경 음악을 최대한 자제하며 생생한 현장음과 편집의 흐름만으로 시체를 발견하기 전까지 전개를 몰아가는 긴장감에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 많은 케릭터들이 효율적으로 플롯 안에 녹아들었는지를 묻는다면 저는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습니다.
혐오의 관점에서 Straw Dogs,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Lowden의 얼굴과 스코틀랜드 외곽의 기가 막힌 풍경을 보는 흥미는 있습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금발을 왼쪽(...)에 두는 일이 많지만 그 금색의 속눈썹에 볕이 어려 아주 연연해보이는 장면에는 늘 환장하는 편입니다. 색과 빛과 온도만으로 내면의 연약함이 드러나는 몇 안되는 순간이니까요.
랩탑 상태가 엉망이 되어 몇번 예고도 없이 꺼지는 통에 - 하드웨어 정리를 안 해준지; - 저장 없이 메모장에 갈겨둔 조각글과 생각들을 날렸는데. 몇번은 그 과정에 마음이 쓰려 아무 것도 쓰지 못하다, 나중에는 오히려 그를 생각하며 사라져도 될 이야기들만으로 빼곡히 메모장을 채우곤 했다. 아무도 알아주길 바라진 않지만 나 스스로는 정리해두길 원했던 몇가지 복잡함들을.
도전을 할지 지금의 안정에 기대야할지 모르겠다며 조언을 구했던 사람에게, 내가 뭐라 말해줄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나는 늘 하고 난 뒤 후회를 하는 편이었고 그 후회들이 쌓여 졸렬하지만 어쨌든 지금의 노력하는 나를 간신히 만들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인 후, 생각해보겠다는 답장을 받은 기억이 있다. 오늘 새벽 그 도전에 성공했다는 기나긴 메세지를 전해오는 사람에게 정말 축하한다고,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며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의 선례에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떠돌이 개처럼 살고 있는 지금의 나일지라도 이런 내 삶이, 시간이, 만남이, 내가 해왔던 모든 비루함과 거창함들이 누군가의 일례가 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고.
한국 힙합의 정서를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노래 몇 곡을 최근 알게 됨. 송민호의 겁과 Supreme Team의 Super Lady. 엄마와 큰아빠와 아버지를 부르짖으며 이 험한 사회에서 나는 너무나 고생이 많았고 아직 너무 여리고 어리다고 외치는 어느 이십 대와 그렇게까지 예쁘진 않지만 내게는 매력적인 너의 외모와 네가 짧은 치마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과 네가 일부러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나의 걱정과 너를 가짐으로 다른 모든 이들을 모두 이기고 싶다는- 좋아하는 네게 내가 해주고 싶은 것에 대한 일언반구 없이 그저 네가 내게 해주었으면 하는 이러한 것들을 노골적으로, 그러나 짐짓 달콤하게 표현하는.
-1997년 11월 25일
귀사의 도서 담당부서 편집자들은 지난 두 편의 제 리뷰를 엉망진창으로 편집해서 저를 무식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더군요. 그래서 전 자기방어를 위해 기록을 바로잡기로 했습니다.
11월 23일에 발표된 아베 C. 라비츠의 <삶의 모방들>에서는 단어 하나가 누락되는 바람에 요점이 무너졌습니다. 전 이렇게 썼습니다. "어째서 유태인 소설가가 학대당한 여자를 비유태인으로, 학대하는 남자를 유태인으로 써야 했는가?" 그런데 이렇게 실려있더군요. "어째서 유태인 소설가가 학대당한 여자와 학대하는 남자를 유태인으로 써야 했는가?" 이는 패니 허스트의 <백 스트리트>에 대한 잘못된 설명입니다. 또 맞춤법 오류도 추가되었어요. 누가 그러셨는지는 몰라도 전 마거릿 설라번이라 정확히 표기했는데 '설리번'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8월 31에는 다이애나 수하미가 쓴 <케펠 부인과 그녀의 딸> 리뷰에서 제가 처음 인물의 성명을 '더 혼 조지 케펠 부인'이라고 언급한 대목에서 '혼'을 삭제하셨더군요. 백작 차남의 부인을 지칭하는 적절한 명칭인데도 말이죠. 또 '윌리엄 3세'라 썼는데 어떤 분이 '영국의 윌리엄'이라 고치기도 했더군요. 윌리엄은 네 명이지만 '영국의 윌리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 윌리엄과 메리의 아들 윌리엄을 말한 것이었고, 그가 단독으로 언급될 때는 3세가 붙어야 합니다. 또 '재단사' 에드워드 몰리뇌를 쓴 것인데 누군가가 '신하'로 바꾸어 놓았더군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전 제가 쓴 원고를 컴퓨터 파일로 하나, 팩스 버전으로 하나 이렇게 두 번 저장합니다. 컴퓨터 파일을 확인할 때마다 팩스 버전을 참고할 수 있도록 말이죠. 하지만 귀사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할 정신이 없었나 봅니다.
게다가 일정 문제도 있습니다. 전 이제껏 마감일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항상 일주일에서 이주일 먼저 복사본을 만들어 저정하고 보내지만, 원고가 너무 늦게 실리는 바람에 항상 제가 마감일을 어기는 것처럼 보이네요. 작년에 저는 플로라 프레이저가 조지 4세의 불행한 결혼 생활에 대해 쓴 책, <브런즈윅의 캐럴라인>을 리뷰했지요. 그건 5월의 책이었어요 전 3월 31일에 원고를 완성했고요. 하지만 원고는 6월 28일에 실렸습니다. 엇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리라 예상했던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혼 소송이 그냥 날아가 버렸죠. 1996년에는 샐리 베델 스미스의 <파멜라 처칠 해리먼 전기>를 리뷰했습니다. 원고를 보낸 건 9월 24일이었는데 11월 17일까지 실리지 않더군요. 그동안 다른 주요 매체들은 이미 같은 책 관련 리뷰를 내보내고 있었고요. 게다가 귀사의 사내 칼럼리스트 두 명이 제 원고가 발표되기도 전에 해리먼 리뷰를 썼습니다. 귀사의 도서 담당부서는 자기네 특종을 자기네가 가로채나 보군요.
저도 할 만큼 했습니다. 이제는 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부주의와 어리석인 짓으로 작가들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귀사에도 더이상 원고를 싣지 않을 생각입니다.
-1997년 11월 25일
귀하가 보내신 편지와 잘못하신 당사자 분의 사과문을 받았습니다. 그러실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전 상당한 인상을 받았어요.
편지를 읽으면서 전 지나치게 응석을 받고 자란 세대에 속할 그분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어머니에게 아첨하고, 선생님에게 아첨하고, 여자 친구에게 아첨하지만 제게는 그럴 생각이 없으시군요. 그분의 감언이설에 전 속을 생각이 없다고 전해주세요.
얼마나 많은 비평가가 귀하의 매체에서 저와 같은 경험을 했는지 궁금하네요. 우리 둘다 알다시피 작가들을 대개 교정지를 받기 전까지는 자신의 원고에 일어나는 일을 신경 쓰지 않지요. 신경을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고요. 전 단어 하나하나 진심을 다해 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신경을 쓰려고요.
이제부터 전 매와 같은 눈으로 모든 리뷰를 읽고 사실 관계 오류를 전부 잡아낼 생각입니다. 철자법에서 구두점, 잘못된 문법, 기본적인 사항에서부터 완급 조절과 음운 변화가 엇나간 온갖 미심쩍인 사례까지 다 집어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귀사에는 정말로 교정자가 필요합니다. 이제 적임자가 여기 있네요. 이번 일요일부터 늘 귀하의 어깨 위에서 굽어보며 시비를 걸도록 하겠습니다.
Florence King 너무 최고;_;
잠에서 깨자마자 Ladybird의 Laurie Metcalf가 The Big Bang Theory의 Mary Cooper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