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vc 2018. 10. 8. 11:18

 아빠가 일하던 전문대학은 우리가 살던 작은 마을의 서쪽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학 캠퍼스를 포함해도 우리 마을은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6~7킬로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오빠와 나는 부모님과 함께 제일 번화가인 메인 스트리트의 남쪽에 있는 커다란 벽돌집에 살았다. 아빠가 1920년대에 자란 곳에서 서쪽으로 네 블록, 엄마가 1930년대에 자란 곳에서 서로 알지 못했을 때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된 관계이지만 모두들 과묵함을 타고났기에 서로를 아주 잘 알지는 못했다. 열일곱 살이 돼서 대학을 간 후에야 나는 세상이 대부분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침 8시는 어김없이 닥쳐온다. 화학약품들을 다시 채워넣고, 월급을 정산하고, 비행기표를 사야 할 때가 다시 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목에 차오르는 고통과 자부심, 후회, 두려움, 사랑, 갈구를 내뱉지 못하고 삼키며 책상에 코를 박고 또 하나의 과학 논문을 완성한다. 20년을 실험실에서 일하는 동안 내 안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자라났다. 내가 써야 하는 이야기와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

 과학은 자기 가치에 대해 너무도 확신이 강해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한다.


모든 것을 그저 쓸어담기에 급급해 훑고 지나가기에 바쁜 나와는 전혀 다른, 오래 바라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을 차분히 늘어놓는 사람에 대한 경애는 여전히 깊다. 삽화가도, 작가도, 낱장을 넘기기 아까워 조용조용 천천히 읽고 있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