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내가 처음으로 LP를 샀던 가수. 그가 Super Love로 돌아왔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시간과 세대를 초월하여 닿는 얼굴, 시선, 목소리, 몸짓이 있다는 사실이 예술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다음날 너는 그녀가 다시 흥분한 것을 본다. 침대에서 나와, 의자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다. 앞의 쟁반에는 안경 다섯 개와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신기한 P.G. 우드하우스의 소설 한 부가 있다.
"그 안경은 다 어디서 난 거야?"
"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한다.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나한테 준 것 같아."
그녀는 그녀의 것이 아닌 게 분명한 안경을 쓰고 책을 아무데나 펼친다. "이 사람 겁나게 웃겨. 안 그래?"
너는 동의한다. 그녀는 늘 우드하우스를 좋아했고, 너는 이것을 약간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좋은 신호로 받아들인다. 너는 신문에 난 이야기를 해준다. 에릭에게서 받은 그림엽서를 언급한다. 헨리 로드는 다 괜찮다고 말한다. 그녀는 빈둥거리며 듣다가 다른 안경을 집어 들고 - 여전히 그녀의 것은 아니지만 - 다시 책을 아무 데나 펼친다. 아마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초점이 맞지 않는 상태에서 보는 듯 하다. 그녀가 알려준다.
"겁나게 쓰레기야. 이거, 안그래?"
심장이 부서질 것 같다. 지금, 여기에서, 바로.
글을 읽는 내내, 오랜 짝사랑 끝에 어느 여자를 가지게 된 남자가 고독과 외로움에 망가져가는 여자를 내버려둔채 뇌까린 구절이 떠올랐다. -이 여자였나, 내가 그렇게 패악을 떨었던 상대가?
상대에 대한 책망과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멋대로 헝클어져 있었지만 적어도 허물어지는 육체를 표현하지 않은 것이 작가된 예의가 아니었을까 짚어보기도 하며.
이 작가의 글이 늘 그렇듯, 말끔하거나 유쾌한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뭔가 상쾌한 것이 보고 싶었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십년 전 영화에 낄낄거릴 수 있는 것 또한 잘 남겨진 기록이 주는 즐거움이겠지요. 그리고 피어오르는 수많은 감정에 혼곤해하는 것이 시대의 변화가 던져주는 제 현재의 화두일 것이고. 언제나 사람은 변하고, 또 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