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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꽤 흥미롭게 - 무엇보다 가장 지표에 안착해있는 영웅이라는 사실이 - 보았으며 여전히 그 시리즈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관객의 입장으로. 그 영웅들의 궤를 이으며 굳이 넓힐 필요가 없는 다른 세계를 닫고 모든 차원에서 각각 활동하는 스파이더맨들을 하나의 세계에 불러옴으로 단절과 연계를 동시에 다루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주제의식이 더 뚜렷해진.
굳이 영역을 확장시킬 이유가 없는, 그렇기에 밀도가 짙어진 새로운 차원의 영웅들.
그렇죠, 힘을 지닌 어른은 아이와 약자에 우선하여 싸워야 합니다.
그래픽도 그래픽이지만 각 세계의 스파이더맨들을 다루는 개개의 사운드가 정말 좋습니다. 특히 편집과 엮여 절묘하게 드러나는 Peter Porker의 효과음 하나하나에는 정말 감탄을 금치 못했던.
우리는 반드시 어른이어야 하는 이들에게 영웅이라는 이유로 지나친 핑계를 준 것이 아닌가 하고.
뜨개질의 기억은 뜨거운 김과 삭아가는 주철 냄새가 나는 난로 옆, 두터운 벙어리 장갑을 벗은 미지근한 손가락이 내 목 뒤를 스치던 것에서 시작된다. 등 뒤에서 어깨를 드리운 자세로 내 서툰 코를 고쳐주던 고학년의 누군가는 갓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 특유의 예민함으로 갖가지 문양을 자세히 알려주었지만 미처 마무리는 일러주지 못한 채 전학을 갔고, 그 이후 내 뜨개질은 줄지도 늘지도 않은 채 시작과 중간 어딘가에서 머물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찾아볼 수 있음에도 그저 내버려 두고 있는 어느 기술. 내 이마며 뺨을 훔치던 고학년의 잔머리와 아침의 냄새가 배여있던 겨울 외투, 약간은 축축하고 서늘한 입김, 늘 젖어있던 매끈한 눈동자의 기억이 어딘가의 유튜브, 다른 누군가의 세심함으로 덮히는 것을 내가 원하지 않아서.
때로 어떤 기술적 정체에는 지극히 감정적인 이유의 미완성이 주어지기도 하고.
모님의 트윗을 보고 잠시. 내가 처음 일본에서 일을 시작할 무렵 무언가 질문을 받고 일본어로 답변을 할 때면 주위가 조용해지는 경우가 잦았는데, 나는 그가 내 언어가 지나치게 서툴어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곤 했다. 어느 날, 몇몇의 일본인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다시 일본어 문장을 내뱉았을 때, 그들 중 하나가 이야기했다. 저기, 네 일본어 정말 아름다운 거 알고 있어? 내 일본어는 조부의 기억과 언어를 기반으로 1960~70년대의 각종 전집과 문학, 역사서를 통해 정립된 것으로 당시의 현대 일본어와는 상당히 유리된, 그야말로 어語보다는 문文에 가까운 기이한 형태의 고립어였던 것이다.
얼마 전 어느 프로그램을 보다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어느 이탈리아 방송인이 이탈리아 문화권의 스위스 인들이 쓰는 이탈리아어를 들으며 진짜 이상해요, 한국어로 치면 대박! 쩐다! 이런 말을 정말 좋은데요? 진짜 아름다워요! 라고 이야기하는 거랑 같아요. 라는 요지의 이야기에 밀려오는 기시감이 있었다. 남자가 동아시아의 유교 문화를 알기 위해 문혁을 겪은 중국이 아닌 그 문화가 형태 이상 남아있는 한국을 택했던 것처럼, 그 문화권으로부터 전래되었으나 추후 단절을 이유로 시간과 환경의 오염과 변화를 겪지 않은, 아류가 오히려 원류의 이상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나보다 더 내 일본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내가 마주치는 대부분의 일본인, 특히 나이가 지긋한 상사들은 내게 오락 프로그램을 보거나 호기심으로라도 젊은 사람들의 유행어를 따라하는 일이 없기를 설득하고, 굳이 내 의견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는 일에 대해 내 의향을 묻고는 답변과 상관없이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형식과 아름다움을 칭찬하곤 했다. 그렇기에 나는 제국어를 모국어로 삼고 있는 쇤코프와 책과 기록으로 제국어를 그저 알고 있는 양이 서로의 제국어에 대한 경외를 품고 있길(...) 바란다. 역사학자를 꿈꾸었던 양은 자신이 어느 경계 이상 절대 알 수 없는, 그러나 보다 거대한 기록 속에서 걸어나온 쇤코프 - 쇤코프는 동맹어도 기가 막히게 할 듯 - 가 발음하는 제국어에 대한 동경이 있을 것이고. 쇤코프는 양이 발음하는 지극히 문적이며 오염되지 않은 - 기이하리만큼 적확하고 아름다운, 더이상 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 제국어가 자신의 과거에 대한 희구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않고, 그저 동맹의 최고사령관이 적국의 언어를 발화하는 일이 없도록 통역을 배치하거나 차라리 자신이 대신 이야기하거나 하며 양의 제국어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겠지. 양은 그 감정을 알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으며 다만 쇤코프가 발화하는 제국어의 유려함에 그저 황홀해한다는 뇌내망상이 있다. 양이 아는 골덴바움 왕조의 휘황, 즉 혈통이라 이름 붙여 유리된 품위란 쇤코프의 언어에서 처음 비롯된 것이기에.
언어란 정말이지 놀랍지요, 고저의 음과 말의 형태와 두드러지는 억양과 그를 대하는 발화자의 태도가 한 사람의 인생을 더듬을 수 있게 하니까요.
강함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굳이 변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는 즈음.
어머니로서 스스로를 인정하는 마지막도, 어머니보다는 성인 어른으로서 해야할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도, 인생에 적당히 거리를 둔 냉소적인 화가를 연기하는 처음도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목격함으로 스스로를 죽이게 되는, 무언가를 직시했음에도 살아남은 이들은 다른 이들의 죽음을 종용한다는 점에서 저는 기독교적 신화나 종말보다는 사상의 전파를 먼저 떠올리긴 했지만, 뻔한 전개임에도 설정과 아이디어가 주는 신선함은 살아있습니다.
이러한 장르적 영화들이 그렇듯, 음향 효과에 기대한 바가 컷으나 오히려 그 부분은 밋밋한 감이 없지 않았고 - 특히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불러오는 방식이 최악 - 배우들이 정말 큰 몫을 하는 영화입니다. 손을 겹치는, 눈을 내리까는, 숨을 몰아쉬는, 단순한 동작 몇몇이 호흡과 장면과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어놓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boy와 girl의 이름을 명명한 Malorie가 이후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네요, 정말.
-저는 대출 제한이 걸릴 정도로 잔뜩 빌린 책과 켜놓은 촛불 몇 개, 귤 한 박스로 올해 크리스마스를 지낼 생각입니다. 모쪼록 들러주시는 분들 모두 평안한 연말되시길.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