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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도 촬영도 음악도 배우도 연기도 편집도 그 모두가 빚어내는 톤도 어느 것 하나 취향이 아닌 구석이 없어 연신 침을 삼켰습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고난과 핍박을 빙자한 과거 한 구석의 연약함을 빌어 광기를 토하는 가운데, 자신의 몸과 마음을 행사함에 흔들림 없는 Sarah Churchill의 행보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도리가. 가장 절박하고 진실된 애정을 고백하던, 그럼에도 닿지 않는 마음을 인정하고 장엄하게 - 혹 실제의 그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할지라도 - 마차에 오르는 그 도도한 모습에 어떻게 혀를 물지 않을 수 있다고.
권력자를 사랑하고, 또 그 권력자로부터 사랑받음이란 어쩌면 이다지도 가볍고 얄팍하고 무겁고 깊음으로 그 앙금과 이양이 정치와 권력과 권모와 공작과 결국에는 전도되는 관계가 되어버리는 것인지.
나체의 사내를 향해 과일을 던지며 낄낄대던 일군의 무리를 향하던 Abigail Masham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네요. 내가 그를 버리고 이런 것들을. 그러나 결국은 자신이 택한 비참을 향해 웃어보이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 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제 올해의 영화입니다.
굉장한 엔딩.
Joanie, do you love me?
Oh my Darling- yes, I love you very much.
-You're such a good liar, how will I ever know?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지킬 가치가 없는 것들을 위해 입을 다물기로 결정한, Kingmaker가 아닌 그림자의 왕으로 스스로를 옹립한 순간의 얼굴, 시선, 방향, 초점과 흐려짐- 그리고 그 위엄이.
Colman의 수상에 이의를 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Close가 너무나 아깝네요. 정말 일설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너무나.
올해의 가벼운 목표로 프렌차이즈가 아닌 영화관 이용하기, 가 있는데. 지난 두 달 동안 여러 장소를 돌며 나와 인접한 곳곳에 이렇게 많은 작은 극장들이 자리해 있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서점을 겸하는 곳도, 소소한 베이커리나 작은 카페와 접한 관계로 기묘한 인테리어로 나를 즐겁게 하는 곳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은 평일 오전 시간대 홀로 조용히 영화관을 찾아 영화 한두 편을 들여다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듯한 노년의 여성들이었다. 팜플렛 한 장 한 장과 작은 엽서, 번들거리는 브로슈어 등지에 영화를 본 시간을 기록하고, 이따금은 기억에 남는 문장을 적거나 배우의 이름을 외거나 하며 당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그 평범함들.
모든 이들에게 취향과 시간과 단어와 언어가 있음을 자주 잊는 나는.
왜 자꾸 뒷말을 하지? 라고 생각했던 한편으로 스스로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후배들의 복지를 위해 윗 사람에게 말 한 마디를 더 불이던 사람을. 모든 것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 이라는 내 선입견과는 별개로 불합리한 사건의 이유를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고 이러한 일이 있었으므로 나는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겠다, 라고 말하던 동료를. 내내 말이 없고 어느 것 하나 설명해주지 않고 행동함에 나를 오래 당황케 했음에도 새로운 후배를 위해 다른 이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자신만의 노트를 만들어 재정립될 관계를 준비하던 이를. 쓸데 없는 정을 주지 말라, 라는 딱 떨어지는 문장으로 나를 대했음에도 내가 실수한 일에 어떤 비난도 하지 않고 뒤처리를 하고 나 스스로 그를 깨달을 수 있도록 시간과 여유를 주던 선배를.
모든 것에 완벽함을 기대하기란 늘 요원한 일이다. 하물며 초 단위로 개념과 주관을 새겨나가는 뚜렷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더더욱이. 단면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로부터 내가 배우고 고쳐나갈 수 있는 것들을 깨달음에 조용히 기뻐하는 나날.
하루하루 더해지는 무거운 일들에 내내 짓눌리고 있음에도 나아짐을, 올라감을, 가파르지 않더라도 조금이나마 성장함을 포기하지 말자, 라고 되뇌는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