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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성, 자아, 혹은 형태, 또는 분류를 만들어가는 구성원에게 이 사회는 언제나 야만이지요. 가장 가까운 친족은 물론 동료, 스승 모두 그들의 성장을 자신의 지위에의 위협 혹은 전복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고.
성장과 분화의 겹이 훨씬 더 치밀하고 두꺼운 소녀-여성의 과정이라면 더더욱이.
유일하게 은희를 하나의 인간로 받아들였던, "노래 불러줄까."라 잘린 손가락을 나즈막히 부르던 영지 선생님의 낮은 음색이 사라진 뒤 무너진 성수대교를 바라보던 그들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네요.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무르던, 내가 알던 세상이 한순간에 사라진 이후 새로운, 그러나 어쩌면 전혀 변하지 않은 익숙한 세상을 바라보던 그 단단하게 깨진 얼굴들.
은희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난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학원 그만둬서 미안해
돌아가면 모두 다 이야기해줄게
Edward Yang과 Lady Bird가 무척이나 떠올랐던.
처음은 식은땀이, 그 다음은 심박동이었고 곧 식욕이 사라졌고 살이 빠졌다. 이전의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많이 말랐네, 말을 들을 즈음 슬슬 진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예상대로의 진단이 뒤를 이었다. 일정을 조정할 때까지는 그다지 실감이 없다, 오래 기다린 약속을 미뤄야겠다는 문장을 남긴 순간 씁쓸함이 밀려들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예기치 못한 감염이 아닌, 이제 내게 병은 시간과 함께 오는구나, 하고.
따릉이의 페달을 밟으며 강변을 지나고, 회청색의 달빛이 수면 위를 조각조각 나누는 것을 오래 바라보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의 안녕을 소원했다. 맛있는 음식, 느긋한 기분으로 모쪼록 평안한 추석 되시길.
-곧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