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vc 2019. 11. 16. 06:43

-격조했습니다.


그럭저럭 버틸 만한 일들이 있었고, 복귀도 완료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닌 오래 키워온 무언가를 다루는 의료적 시술은 처음이라 아픔이나 괴로움보다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하는가에 대한 두려움이 컸는데 - 모국의 법적 관계자가 없기에 그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 나라에서 또 다른 나라에 상주하고 있는 관계자와 함께 그 절차를 밟아야 하는 번거로움 또한 - 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해야만 했던 많은 것들 사이에서 받았던 수많은 눈길과 연민과 귀찮음과 혀를 참과 굳은 팔짱들이, 이제는 더는 흉터로 남지 않고 그저 사라질만큼 질겨진 피부를 어루만지며 정말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머리가 나빠졌다고 생각할 수도, 어쩌면 성격이, 혹은 외모가 달라졌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는 주치의의 말이 약간은 의아했던. 그러나 고작 십오 분의 기다림에 모든 것을 뒤엎고 당장 돌아가고 싶어하는 스스로를 자각했던 순간의 아연함, 본연의 내가 얼마나 성급하고 강퍅한 인간인지를 곱씹었던 나날들.

 

내가 원한 적 없던, 그저 주어진 것이기에 내겐 큰 가치가 없는 외면의 화사함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서 느낀 공허함 또한.


다만 다시 책을 들고 끝까지 집중하는 일이 예전보다는 쉬워졌기에 내가 아프긴 아팠었구나, 하고. 


육체를 다루는 일에 종국이란 없고. 


나는 더이상 할 수 없어요, 미안합니다. 알겠다고 고개를 숙이는 그 길고 검은 머리카락, 염색약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그 머리카락과 단단한 가르마에. 나는, 내 마음은 언제나 이런 것들에 넘어지곤 해서.  


You were born into a strange world

Like a candle, you were meant to share the fire

I don't know where we come from, and I don't know where we go

But my arms were made to hold you, so I will never let you go

Cuz you were born to change this life

You were born to chase the light

You were born


Love your mother, yeah she's s good one

She'll build you armor; keep you warm as a hen

The stars may fall and the rains may pour

But I will love you evermore

You were born to make this right

You were born to chase the light

You were born


가상의 적을 대비하며 처음 인간이 벽을 세우고 공간을 나눌 때, 예기치 못하게 얻은 가장 큰 가치는 소리가 아니었을까요. 자연을 상대로 하는 가장 거대한 예술 아래, 그 공간과 환경의 지배로 얻어낸 소리의 온전한 공유-닫힘.


언젠가 공간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소리와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도 나고. 


어쨌든 굉장히 인상적인 공간이었음에.


지하이기에 용납가능한 빛의 쓰임, 드리움. 그리고 그 그림자와 맞닿아 있는 순교의 이미지들.


모님의 강력 추천으로... 많은 말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언젠가 Sherlock을 이야기하며 저는 이미 존재하는 유명 케릭터들이 없는 세계의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대해 불평했었지요. 악은 이런 방식의 비틀린 세계와 거대한 변명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저는 더이상 이런 것들을 알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디지털 이후 이미지는 더이상 현실을 참조하지 않게 되었다. 가장 현실과 동기화된 매체라 여겨진 사진이 현실이 아닌 그래픽을 덮게 되었다. 


제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Halt and Catch Fire의 Mackenzie Davis가.


영화 좋더군요. 전 세기의 열광을 등에 업은 많은 후속작들이 그러하듯 여전히 액괴에 집착하는 등 꼰대같은 구석이 없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언어와 세계와 인물과 연대와 이 모든 고착에도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에.


듀모님의 007에 대한 투덜거림처럼, 왜 굳이 Terminator라는 이름을 가져야 하지요? 


그 장면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령관님, 나를 깎아 당신을 지켰지만 그 마음이 당신의 동생을 죽였다고 하면, 당신은 내게 어떤 표정을 내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