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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rvc
2019. 11. 19. 04:53
-누군가의 자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 무방비하게 흐트러진 모습을 눈에 담게 된다면. 절대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게 된다고 속삭여준 사람이 있었다.
심장과 순환체계를 송두리째 들어낸 강화 수술 이후에도 여전한 이 마음만은 붉고, 검은. 마치 인간의 것처럼.
인간의 몸이 얼마나 쓸모없는 윤곽과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부차적인 잉여로움에 반하는 것 또한 인간과 다른 인간이며.
제가 어떤 것에 걸려 넘어졌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입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세상을 잃은, 망가질 수조차 없는 기다림 끝에 마침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나갈 후계를 얻은.
내가 구한 세상에 너는 없고, 라는 화두는 언제나 저를 좀 돌게 만들곤 해서. 네게 기인한 상처로 무언갈 깨닫고, 나는 성장하고, 너를 찾고, 우리는 동시에 변화하고, 다시금 피어난 상실로 인해 비로소 나는 네가 아는 그 누군가가 된다, 라는.
추운 아침이었다. 나는 코트 단추를 반만 채운 채 텅 빈 거리를 지나 끝까지 걸어갔다. 내 앞으로 입김이 피어올랐다. 내 뜨거운 몸과 이 차가운 공기를 동시에 견뎌내기에는 내 피부가 지나치게 연약한 경계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탐욕스러웠고 어색함 따윈 없었으며 동시에 어쩐지 모순적이었다. 그녀가 어둠 속에서 나를 향해 희미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에는 적의가 없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손짓이 내 마음을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