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vc 2020. 5. 7. 10:57

미칠 것 같다거나 미칠 것 같지 않다거나, 이 미침이 제발 좀 멈춰줬으면 좋겠다거나 끝도 없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거나. 누구에겐지 모를 바람을 계속하며 이대로 무언가 멈춰버리길 기다린다. 모든 것이 있지만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숨소리, 혹은 먼지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그저 영원한 정지.


-모르지 않음에도, 내 돈과 시간을 들여 확인을 바라는 마음.


정교한 복제 사진 또는 영상으로, 혹은 증강현실로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주장하더라도 내 안의 무언가는 끊임없이 되뇌이겠지요. 이 모든 것들은 실물에 아까운 온전한 가짜일 뿐 언젠가 나는 진짜를 확인하러 가야만 한다고. 그럼에도 진짜를 향한 정적과는 달리 가짜에게서 위로받는 이러한 마음만은 여전히 생생하여 나를 웃게, 또 울게 하고.


스스로 뭔가를 소유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뿐 남들이 주는 것들을 딱히 거절하는 성정은 아니라 새로운 집에는 받거나 얻은 책장, 세탁기, 의자, 접시, 컵, 수저셋, 시트와 쿠션들이 쌓여가고. 미리 재단한 냉장고 자리와 맞지 않는 어딘가의 냉장고를 미리 양해를 구하고 어디론가 보내는 과정조차 그리 귀찮지 않았다. 여전히 누군가 뭔가를 준다고 하면 나는 생각도 없이 네, 라는 대답을 남기고. 내가 옮겨온 것은 액자와 책, 매트리스와 조명 정도지만 어느새 이 작은 집은 이곳 저곳의 물건으로 넘쳐나는 중.


모두들 쓰지 않지만 버리지 못한, 하지만 누군가는 잘 쓸 수 있는. 그러길 바라는 물건들을 하나둘은 가지고 있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