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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도 큰 키와 그 당당한 신체언어, 뚜렷한 태도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좋아서.
새로운 숙소 근처에선 별이 무척 잘 보인다는 말을 하던 옛 동료는 문장의 말미에 "그래서 말이야, 우주 같았어."라는 말을 덧붙였다. 당연스레 시골countryside라는 단어를 상상하고 있던 나는 조금 당황했다. 단지 풍경이 좋다는 이야기를 수식하는 묘사로썬 지나치게 장황한 언어가 아닌가, 하고. 며칠 뒤 그 동료를 데려다 줄 기회가 있던 나는 집으로 들어가는 동료를 배웅하며 무심코 하늘을 보다 정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오로지 자동차의 서치라이트만이 형형하던 벌판을 비추던 별빛, 그 화사하던 밤하늘. 정말이지 우주였다.
이따금은 떠오르기도 한다. 황도 캔을 좋아한다는 나의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던 유럽의 어느 동료는 - 과일이 깡통에 절여진 양양을 상상하기 힘든 나라이기도 - 내가 오밀조밀하게 깎인 노란 황도들이 설탕물과 함께 쏟아지는 모습을 묘사하자 "알아, 요거트에 수북히 젖은 시리얼을 보면 정말 포만감이 들지."라 내 감상을 일축했다. 조금은 비슷하지만 정말 다르기도 한, 허나 어정쩡하게 닮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던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고 어느 나라에서건 슈퍼마켓에서 황도 캔이 있나 들여다보는 버릇을 지니게 되었다.
이해 못할 타인과 엇비슷한 감상으로 인해 생겨난 버릇.
소액이지만 오래 청약통장을 가지고 있었고, 언제나 임대아파트를 기다리다 결국 이 곳으로 자리를 튼 세대주라 임대아파트에 대한 감상은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정도 였는데. 이 근처에 임대아파트가 있으니 집값 상승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과 그 주민들에 맹목적인 분노를 표하는 사람, 슈퍼마켓에서 마주친 무례함을 토로하는 또 다른 사람들. 약간 배움이 느린 자신의 자녀를 괴롭히는 근처 임대아파트 아이들을 견딜 수 없어 이사를 했다는 어느 존경하는 선배의 일화에 조금 아연해졌다. 언젠가 모님이 우리집을 방문했을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저기가 임대아파트, 저기는 어디, 저기도 임대아파트, 라 동네를 소개한 것이 떠올라 정말이지.
일 외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할 수 없어진 나날. 어제는 긴 꿈을 꾸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내가 다시 그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꿈이었다. 잠에서 깬 뒤에도 그 쓰라린 여정이 남아, 그저 속만 검고 검어진 느낌이었다. 하루의 힘겨움에 어제 새로 들어온 누군가가 말했던, 최종 면접 때도 면접관과 자신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파티션을 쳤다는- 그거야 말로 진짜 블라인드 채용이 아니겠냐는 우스개가 오래 남았기 때문일까.
모쪼록, 최대한 많은 이들이 절망하지 않고 넘기는 시기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