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vc 2017. 12. 21. 18:17

-굳이 이름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내년이면 남자는 변호사 시험을 치른다. 주에 근거한 기반을 선택해야 하는 남자는 비로소 우리의 이상한 신혼이 너무 길지 않았냐고 되묻는다. 평생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나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너도 병원에 있으니 느끼지 않아? 함께 하는 시간의 양은 절대치로 잴 수 없다는 거. 짧은 수도 길 수도 있는 시간의 양보다 나는 그냥 지금 함께 있을 내 사람이 필요해. 가능한 돌려 말해주는 남자의 상냥함과 우유부단을 알고는 있지만, 생의 정착이란 단어를 품은 적 없던 나는 당황하고 당황하여 화살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만다.


이 과정들이 네겐 오로지 희생 뿐이었어? 남자는 그저 얼굴로 대답하고, 나는 다시 답할 언어를 잃고.


누군가 말한 기억이 있다. 너처럼 멋대로 사는 애가 힘들 리가 없지. 세상 천지 너처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사람도 없어. 네가 힘들다면 말도 안 되지.


내 행운이 온전한 내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허나 어떤 노력은 쉬워보일 수도 있구나, 하고. 


그토록 어린 아이들도 저마다의 얼굴이 있다.


조금 삭은 분유와 젖은 기저귀 냄새, 덜 들어간 약과 맹렬하게 산화하는 땀 내음. 그 시고 달콤한 냄새를 맡을 때마다 모님이 묘사하던 로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조금은 아기 같던 그 체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