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周冬雨, 무척이나 추운 이름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언제나 하관이 좁고 위태로운 윤곽의 북방계 미인을 좋아했었지, 하고
어느 현장에서 화제가 된 배우의 목소리에. 나 또한 사소하게 거대한 것들을 어기는 이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싶은 때가 하루에도 수십 번이기에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 특히나 많은 것들이 미래의 수익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곳에서 - 그럼에도 자신이 그 이름만으로 투자가 결정되어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두르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이가 저토록의 언어를 저토록 수많은 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했다는 것에,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모종의 시원함이라는 사실을 견딜 수 없다. 때로는 아무런 개운함을 남겨주지 못하더라도 그러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명제는 언제나 유효하다.
나는 모든 것들의 공개에 손을 들어주는 편임에도. 모든 일화가 순식간에 전파되는 SNS에서의 도덕과 윤리, 법과 질서, 빛과 어둠, 그 경계.
이루어지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에 설렁설렁하자고 마음을 먹었던 이년 전의 목표는 한 손으로 달걀 깨기, 작년의 목표는 엎드려 책 보지 않기, 올해의 목표는 아직 미정으로 지금 준비하는 시험에 통과한다면 이 시험의 통과가 되겠지- 하고 아마도 느슨하게.
정보과 소유의 공개로 유명해지고 싶은 바람이 적었기에 유튜버, 혹은 다른 스트리머를 꿈꿔본 적 없지만 이 블로그를 끈질기게 운영하고 있는 이유가 그렇듯 나 또한 타인의 관심에 대한 욕망을 버릴 수가 없어, 어떤 것들은 입 밖으로 표현하면 할수록 누추해진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쓴다. 어떠한 성실이나 자본의 추구가 아닌, 내가 좋아하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가능한 내 감정이 투사된 그대로 박제해두고 싶기에.
글은 섣불리 누추해지지 않고.
너의 낡은 도시락에 매듭을 지어주었던, 그 매듭을 풀기가 어려워 누군가의 애정이란 이렇듯 힘들게 풀고 나서야 알아차릴 수 있는 덜 식은 반찬 같은 것이라 여겼다는 너의 언어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순간을 스친 그 분의 십년째 기일. 모쪼록 너의 슬픔이 오늘 하루를 넘기지 않기를. 그저 먼 곳에서.
결국 이 책은 질문도 답도 아닌 바람으로 끝난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 방법을 찾고 싶다. 싫다보다 좋다는 단어가 많은 삶을 살고 싶다. 실패를 쌓고 더 좋은 방향으로 눈을 돌리고 싶다. 감정의 파동을 삶의 리듬으로 여기며 즐기고 싶다. 커다란 어둠 속을 걷고 또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조각의 햇살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