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vc 2021. 1. 18. 13:59

-그런데 신 안에서 살 수 없다면, 적어도 신 안에서 죽기를 원활 수는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두 가지를 결합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 안에 나를 산 채로 파묻는 것.


도서관은, 박물관은, 미술관은 언제쯤 개관할까. 책에 생활비를 쓸 여력이 없고, 입장권을 사거나 인터넷으로 예약을 할 만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이 시대의 문화적 빈곤을 어떻게 넘기고 있을까. 


최근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나는 언제나 당신이 불행할까 불안했다. 주기적으로 내가 아는 물리적 흔적을 좇으며 당신이 내게 말했던 것처럼 망가진 시간을 살까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한 흔적이 희미해진지 몇년이 지난 지금도 내게 당신은 단 하나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뺨이 붉고, 달콤한 술냄새가 나는, 가는 머릿결이 일렁이던 카멜색 코트와 비틀거리며 돌아서던 모습. 내게 당신은 언제나 해묵은 슬픔이자 잊혀진 스승이었다. 내게 처음으로 배움과 교육의 중요성을 알려준, 학교는 졸업하는 것이 좋겠다며 몇번이나 내 손에 만 원 이만 원을 접어 쥐어준, 그러한 당신조차 나와 몇 살 차이나지 않는 새파람이었음에도 내게는 당신만이 어른이었다. 모든 이들이 나를 파먹지 못해 안달하던 그 때에 그저 고요히, 웃풍이 성성하던 당신의 방에서 나를 재워주었던.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얼마든지 가져가라며 나를 두고 출근길을 나서던. 그 부어오른 종아리와 뭉툭한 검은 구두, 올이 풀리기 직전의 커피색 스타킹 따위. 내가 얼마나 당신을 찾았는지, 내가 쥐기 시작한 것을 돌려주고 싶었는지, 하지만 여전히 당신이 불행할까 내 숨을 졸였는지. 아주 우연히, 전혀 다른 것을 알아보다 당신의 흔적을 발견하고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를 기록해두고 싶었다. 적어도 당신이 괜찮아보이는 사람을 만나 온전한 삶을 사는 것에 내가 얼마나 벅차했는지를. 당신이 이름 붙인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건강하고 예뻐보였는지. 내게 오는 행복의 일부분은 언제나 당신의 몫이길,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