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차가운 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추리 소설과 읽으면 정말이지 고조高調되는 느낌. 러시아의 피아니스트는 언제고 강렬하구나, 하고.
티스토리 플랫폼이 변경되며 지속적으로 계정 변경을 요구하는 것도, 마음에 드는 양식도 없어 한동안은 이곳을 내버려 두다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렇다고 HTML로 게시판을 짜는 양상은 더이상 하기 싫어; 노력없이 얻어지는 대가에는 나를 맞추는 수 밖에.
지속적으로 파견을 나갔다 다시 돌아오고 뭔가 다시금 일이 생기는데다 몇몇 사유로 휴무가 길어지는 동료가 있어 근무표가 하루가 멀다 하고 뒤바뀌고 있다. 밤근무를 하지 않는 보직을 찾아보다가도 그래도 할 수 있는 한은 해봐야지, 견뎌내야지,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한 동료 하나는 책임자에게 근무표가 너무 엉망이라 일에 집중할 수 없다며 재고해달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했다며 수근수근 또 말이 돌았다. 책임자는 책임자 대로 당돌하다, 경력이 있는 선배들은 경력이 있는 대로 건방지다, 우리는 또 우리대로 한 사람의 근무만 바뀌어도 영향을 받는 이들이라 이러저러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는 중. 전 직장에서 나는 매양 혼자의 무엇이거나 가장 어린 사람이었기에 내 행동과 말은 그저 어떤 독특한 사람의 기특함으로 밖에 치부되지 않았음으로, 이렇게 사회생활을 갓 시작하여 그릇된 것을 바꾸려는 의지가 있는 세대와 함께 일을 할 수 있게 됨에 늘 감탄한다. 그대로 승진하여 굳어진 중간 세대가 주는 안정감도 분명 무시할 수 없겠지만 이렇듯 부유하며 불안해하며 내 일과 변화에 대한 노력이 차츰 무언가를 바꾸어갈 수 있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라니.
조금, 조금만 더 해보자. 늘 생각하는.
분명히 사랑 같은 것도 있었지만 사랑 그 자체는 아니었다.거기에 분명히 있던 것.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저변 탁아소로 복귀한 나는 1부에서 이야기한, 긴축 탁아소가 폐쇄되고 그 공간이 푸드 뱅크로 변한 모습을 보았을 때, 무기질의 철제 선반이 늘어서고 비닐봉지에 든 식재료와 통조림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을 마주했을 때, 거기서 없어진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없어진 것, 그것이야말로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나키즘이라 불린 '존엄성'이었다. 아나키즘이야 말로 존엄성이었다. 서양에서는 존엄성을 장미꽃에 자주 비유하는데, 아나키즘이라는 존엄성은 천국에 피는 아름다운 꽃도, 온실에서 꺼내면 말라비틀어지는 연약한 꽃도 아니다. 그것은 땅바닥의 진창에서 수분을 흡수하고, 햇빛을 받지 못하는 가장 열악한 토양에서도 당돌하게 통통한 꽃을 피워내는 장미다.
Owen Jones - 기득권층이 이미 5년전이라니! - 와 ブレイディみかこ의 책을 동시에 읽으며. 미지의 것이기에 쿨하게 느껴진다는 알 수 없는 동양에서 온 나와 옥스브릿지를 나오지 못한 워킹클래스의 누군가를 비교우위적으로 무시하던 이들을 떠올린다. 계급외 것에 대한 차별은 용납할 수 없지만 계급내 차별은 당연한 것이라 여기던 그 유연하고 무례한 태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