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vc 2021. 12. 4. 14:33

정말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나는 언제나 나와 얼굴을 마주한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게 중에서도 모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아무런 연관도 맥락도 없는 말을 두서 없이 늘어놓을 수 있는 지인이란 언제나 좋은 문구를 쌓아가는 오래 묵은 책 같아서. 새로 나온 번역이 출간된 책, 최근의 영화, 음악, 작가, 요즘 열중하고 있는 장르, 길을 가다 만난 사람, 나이든 여성, 직장의 규칙, 점심 도시락, 마스크 법칙, 상사와 부하, 중간관리직이 된 이후 직장의 느낌, 어느와 여느 친구들- 이런 저런 이야기에 와인 한 잔에 쉽사리도 취기가 올랐다. 

 

내 몸을 안다는 것은 내 한계를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자제와 약간의 오만과도 닿아있다. 아쉽게도 안녕을 토로하고 길게, 아주 길게 걷다, 어느 편의점에 앉아 미지근한 커피과 미련을 함께 홀짝이다 문득 열어본 휴대폰의 배터리가 모두 닳아있어 한참을 웃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는 늘 짧고, 나는 그를 곱씹으며 뒤늦게 아쉬워만 한다.

 

즐거운 시간이었음이 사진 너머로 흘러나와 저 또한 무척 기뻤습니다. 늘 면목 없는 모습 보여드려 죄송하고, 늦지 않게 다음에 또 뵐 수 있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나와 다른 계를 지닌 단단한 사람들을 만나는 흥겨움.

 

여전히 나는 언어와 문장이 서로를 구원하는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

-일상을 영위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가장 처음 방문했던 곳. 

 

국보가 지닌 무거움이 다른 유물들과 궤가 전혀 다른 것이 흥미롭고 조금 슬펐던. 여전히 낮은 것들에게서 귀한 것은 나오지 않더군요. 

 

권교정은 매지션을 빌어 호감의 막을 두르고 사람들의 자연스런 애정을 얻는, 그렇기에 영원히 무언가의 중심에 닿을 수 없는 휘발적인 휘버를 묘사하는데. Leto와 Jessica의 관계에서 그를 떠올리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내 애정조차 속단 할 수 없는 나의 사랑, 영원히 믿을 수 없는 나의 여인. 그렇기에 Leto는 Jessica가 딸이 아닌 아들을 출산했음 - 정말 20세기적인 대단한 설정 - 으로 그를 믿기로 한 것이 눈에 보여 이 시대가 얼마나 고색창연한지를 다시금 더듬게 된다. 일컬어지는 신이 없기에 전설이 될 소문과 신화가 될 이야기들을 퍼트리고, 몇백 년동안 그를 감내하며 긴 시간 신이 될 길을 준비하는. 이미 만들어진 성흔을 덧입게 될 존재가 걷는, 그렇기에 인간의 길이라 칭할 수 없는 영원한 별의 길. 

 

한국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점으로 이루어진 단절이고, 미국의 시간 개념은 선이라 한국에서 시간과 관련된 열린 개론은 나오기 힘들거라 생각했지. 일본은 한국과 유사한 편이지만 중국이 또 다르다는 것도 흥미로움.

한강의 대교들을 지날 때면 반드시 널 생각해.

-나는 오프라인 사람이고, 물질 세계에 속해있다.

모님의 말에 놀랐던 이유. 나 또한 어제 코로나 기간 동안 허리까지 닿아있던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코로나 기간 동안의 시간적 흐름을 가시적으로 느끼고 싶어서. 이렇게 길었었나, 하고 놀라기도 했고.

남자는 여전히 웃고, 말하고, 다정하고.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너 또한 썩어문드러지고 있겠지만 그는 나도 마찬가지인걸. 내게는 추잡함이 없는 것 마냥 남자에게는 웃음과 아름다움만 보낸다. 서로의 일상이 안정적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작업실을 만들면 나눔하는 가구들로만 방을 채우고 피아노만 실컷 쳐야지, 하고. 방음 공사비용과 반지하 전세가들을 알아보는 중인.

누구에게도 아름답게 보일 필요가 없는 몰두의 방.

사람마다 잠에 빠져드는 감각이 다 다르다는 사실이 최근의 발견. 나는 혈액이 서서히 무거워지며 몸밖으로 흘러나와서 배경과 함께 잠기고, 그로 인해 삼투압의 비율이 맞춰지며 모두가 한데 뒤섞이는 느낌으로 잠에 빠져드는데. 어느 동료는 사방이 검어진다고 이야기를 하고, 어느 동료는 몸이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들 하여.

 

직장에서 독재와 철인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플라톤에 대한 이야기를 아리스토텔레스로 착각하여 이야기했음을 깨닫고 밤잠을 설친다;

두루뭉술한 것, 어슴푸레한 것, 희미한 것, 애매한 것, 내 손안에 있다고 확실히 장담할 수 없는 것을 믿지 않는다. 직접 겪은 이후의 사유와 통찰을 통해 내것이 되지 않은 간접경험에 대한 정보를 확신할 수 없다. 타인의 책과 타인의 말에 전적으로 기댈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 진리보다는 그 시대와 맞는 생활에서의 유용성을 신봉하는 내 가치관 - 프래그머티즘에 가깝지만 자본주의에 대해선 냉소적이라는 것이 - 은 언뜻 배금주의와 등을 맞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든 손에 쥘 수 있는 가치, 그를 부정한 적도 없고. 이 일을 시작한 이후 맞지 않는 자리에 놓여진 것 같은 미음이 옅어진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머리를 쓰지만, 어쨌든 몸을 함께 사용하고 있기에 육체가 이 모든 경험에 익숙해져가는 몇년 간의 연륜을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기에. 

 

아, 모님의 말처럼 저 또한 어쩔 수 없는 체육인이네요.

 

이름 없는 섬들에 살던 많은 짐승들이 죽어가는 세월이에요
이름 없는 것들이지요?

말을 못 알아들으니 죽여도 좋다고 말하던
어느 백인 장교의 명령 같지 않나요
이름 없는 세월을 나는 이렇게 정의해요

 

아님, 말 못하는 것들이라 영혼이 없다고 말하던
근대 입구의 세월 속에
당신, 아직도 울고 있나요?
오늘도 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읍을 지나
신시新市를 짓는 장군들을 보았어요
나는 그 장군들이 이 지상에 올 때
신시의 해안에 살던
도롱뇽 새끼가 저문 눈을 껌벅거리며
달의 운석처럼 낯선 시간처럼
날 바라보는 것을 보았어요

그때면 나는 당신이 바라보던 달걀 프라이였어요
내가 태어나 당신이 죽고
죽은 당신의 단백질과 기름으로
말하는 짐승인 내가 자라는 거지요

이거 긴 세기의 이야기지요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이야기지요

 

-왜 사람들은 손에 닿을 수 있는 별은 끌어내리고 싶어하는지?

 

최근 감정 조절에 고난을 겪고 있다. 꽤 큰 스트레스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일을 할 때 나는 되도록이면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과 거리를 유지하려 했기에 그로 인해 얻게 되는 부차적  장점도 적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감정 변화의 폭이 커지고 나 자신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밀려올 때나, 나도 모르게 욕을 중얼거리는 스스로를 깨달을 때의 탈력감이 크다. 그렇기에 한동안은 시발노트;를 좀 쓰다, 요즘은 낱알이 있는 염주를 차고 무언가 치밀 때마다 하나하나 알을 헤아리는 중이기도. 내가 조절할 수 없는 나의 것이 생겨나는 두려움, 한때 괜찮았던 것들을 확신할 수 없는 공포와 하루하루 맞서는 일. 이렇게 병이 사람을 굴복시키는구나, 하고.

 

Jonny Greenwood의 음악도 음악이지만 칼날같은 연출이 정말, 정말 굉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