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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은 눈앞의 이 사람만을 위한 순간이 있는 것 같지. 이 사람을 위해 내가 태어나 자란 것 같은,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해 흐르는 시간.
내 마음과 손길이 가는 동안 아무 것이고 또한 아무것도 아닌.
지금까지 다녔던 학교들 모두에 나름대로의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닌데. 예술을 필두로 한 그 작은 대학이 내게 깊게 자리한 이유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던 내 저변을 넓혀준 첫번째 학교이자 내가 졸업장을 받은 드문 교육기관이었으므로. 그 학교의 어떤 것을 내가 잘 활용했는가는 둘째치고 전혀 다른 것을 듣고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기회와 타인의 재능과 내 능력을 잴 수 있는 안목, 미리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을 알려준 동료들을 내게 줬으므로. 언제나 기회가 되면 내 자본을 조금쯤은 투자하고 싶다고 생각했지.
최근 내 유년을 돌아보는 일이 많은 것도 비슷한 종류의 활동을 하고 있어서.



누구의 인정도 원하지 않는, 끝까지 내 것이리라 여기는 것은 음악. 내가 온전히 위로받고 영원히 사랑할 장르는 글. 그러나 내 영혼을 뒤흔들며 언제나 지고의 감각에 다다르게 하는 것은 회화라 생각한다.
예술 앞에서 우리는 어쩌면 이토록 말랑하고 부드러워지는지. 자주 울고, 웃고, 상처입고, 그 상처 위에 또 다른 상흔을 새기고. 그리고 온전한 흉터를 남긴 이들이 그 위대함으로 후대에 이를 드러내고.
-아마도 나는 생의 마지막까지 쓰고 읽겠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이라 생각하면서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화하지 않을 내 행동이나 버릇을 떠올리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해짐. 나를 나답게, 어떤 순간이 닥치더라도 이 주도권만은 잃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