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vc 2022. 3. 5. 13:35

당신이 정말 아무렇지 않은 미인이라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종류의 공부를 하는 중으로 맥락없이 긴장을 타면서도 그 스트레스는 풀고 싶어 어느 사이트에서 좀 놀았는데, 지나가던 모님;이 너지? 공부해. 짚어주셔서 울면서 빠져나옴. 하면 재밌는데 책상에 앉기까지가 너무나 힘드네요;_; 이러다 현실도피의 게재로 이십 년전 드라마 죄다 복습하고 시퀀스 별로 씬바이씬할듯.

역사 덕질은 약간 엉덩이 불 붙은 상태에서 하는 재미라.

달항아리에 빠져있으나 내 집에 들이고픈 마음은 없어 그냥 자주 보고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 고요, 기품, 고아한 색조과 어느 순간에서도 안정된 분위기.

나이가 든다는 장점 중 하나가 소유욕과 과시욕, 타인의 시선을 굳이 연관짓지 않아도 되는 것인듯. 좋아하지만 굳이 가지지 않아도, 그를 가진 내 모습을 타인이 본다는 상황을 상상하지 않아도 무방함. 좋은 것은 그저 좋은 것 자체로 완결되는, 내 눈과 전두엽이 간직한 어떤 아름다움.

내 마음에 타인의 증명이 필요하리란 상상은 드물지만. 그래도 나는 이 영화가 많은 상을 받고 감독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며 더 많은 작품을 하길 바란다. 소비사회의 유명세와 가시성이란 어쩌면 능력보다 더 앞서는 것이 되었으므로.

누군가는 Only know you love her when you let her go.라 이야기하고 다른 누군가는 우리 옛날에 사랑을 했다니 우스워.라 표현하지.

부정은 언제나 긍정보다 과한 힘을 발휘하고. 혐오는 언제나 무엇보다 강력한 프로파간다가 되어.

지각이나 결석, 결근을 해본 적도 병가를 내거나 조퇴를 한 기억도 거의 없어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 체력이 좋구나, 하고 되내곤 한다. 그나마 친절과 다정을 행세할 수 있는 이유도 체력이 되기 때문이구나, 하고.

사람들은 모두 고결한 죽음을 꿈꾼다. 어찌 살아왔든 마지막은 품격 있고 우아한 죽음을 꿈꾼다. 울지 않는 탄생이 없듯, 울지 않는 죽음도 없어야 했다. 삶의 끝에 눈물이 없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울어줘야 한다.

"네가 뉴욕에서 살고 있는 삶을 가끔 생각했어. 우리의 시차를 헤아려 보기도 했어. 네가 깨어있을 때, 잠자리에 들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있었지I used to think about your life in new york, I try to imagine your room. I kept track of the time difference so I know when you were awake and when you were asleep.”

밤근무를 할때면 휴대폰 액정 화면만 켜고 다니는 경우가 잦은데. 메모장에 주로 장 볼 거리를 써 다니다 보니 이따금 눈치없는 메모 앱이 현미, 두부, 알배추 따위를 기나긴 새벽 고즈넉한 시간 살금거리는 발걸음에 맞춰 읽어줄 때가 있다. 창피하고 우습지만 쓰봉이나 이부프로펜 따위에 비하면 그나마 귀여운 단어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음식을 잘 데워먹지 않는 이유처럼 내겐 맛보단 식감이라. 스파게티는 좀 덜 익은 듯, 주식은 100% 현미에 밀기울이 씹히는 통밀빵, 굳이 백미를 먹는다면 쌀알이 모두 선 듯 적당적당히 익힌 쪽이 좋음.

Klaus Mäkelä. 작년 내한 취소됐을때 모님과 울었는데 쇼스타코비치는 다시 들어도 좋더라. 내 취향은 시벨리우스 쪽이긴 하지만. 첼리스트였다고 하더니 현악을 다루는 솜씨가 좋은 듯.

도저히 안될 것 같아 Zimerman 취소하고 혼자 얼마나 시름에 겨워했는지.

Víkingur Ólafsson도 엄청 좋아함. 난 드뷔시에 강한 피아니스트에게 약한듯;

우리는 언제나 관조할수 있는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보곤 해서. 미디어의 방향도 그러하고.

원래도 노래에 재능이 없고 - 박자에 집착하여 늘 음정에 나감 - 건반을 두드릴 때면 더더욱 노래를 하다말다 하게 되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더욱 대단해보이는 즈음.

눈이 올 때면 떠오르곤 하지. 프로젝트 망하고 얇은 코트 차림으로 센트럴 파크에 앉아 내리는 눈과 이국적인 풍경과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내 절망과 그 무거운 마음과 익숙한 공기의 냄새, 그 시간과 내리는 빛과 저무는 태양과 어렴풋 흩날리던 먼지의 정경. 내 곁에 앉아 아무 말 없이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던 동료에 대한 고마움이라던가.

이제는 연락조차 할 수 없게 된, 많이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기만을.

하지만 우리의 친화력에도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우리 종에게는 우리가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위협이 되는 무리를 우리의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다. 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연민하고 공감하던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공감하지 못하므로 위협적인 외부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모두 무탈히, 지난 땀과 눈물이 차고차곡 쌓아온 인민 민주주의의 권리를 행세하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