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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글을 흥미롭게 쓰는 작가이자 건축가라 생각했기에 그 삶과 마지막을 내내 생각했다. 어느 쪽이든 부디 평온하길.
네가 겪은 육체와 정신의 모험은 너의 단순성을 고양시켜, 육체 속에서는 그렇게 오래 살 수 없겠지만 정신 속에서는 오래도록 살아남게 했어. 너는 예감에 가득 차 "술래잡기"에 의해 죽음과 육체의 방종에서 사랑의 꿈이 생겨나는 순간들을 체험했어. 온 세상을 뒤덮은 죽음의 축제에서도, 사방에서 비 내리는 저녁 하늘을 불태우는 열병과도 같은 사악한 불길에서도, 언젠가 사랑이 샘솟는 날이 올까?
너의 긴 밤도 짧은 낮도 내겐 온통 사랑이어서.
매일매일 죽음을 생각한다. 힘들고 고되어서가 아닌 지금이 가장 폐를 끼치지 않을수 있을 것 같아서.
“Purity like virginity, as soon as you touch it, it becomes corrupt." 이런 대사에 그렇게 힘을 주다니.
한 달 동안 미치게 바빴고 자주 달렸고 자전거를 탔고 울며 공부를 했고 간신히 두 권쯤의 책을 읽었다. 졸린 눈으로 치른 큰 시험의 결과에 pass를 얻었고 다른 하나의 연말 시험을 위해 또 다시 달리고 타다 우는 얼굴로 책상에 앉는 중.
힘든 건 상관없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라는 말을 했고 힘들다고 대내외로 인식되는 곳에서 늘 생각해왔던 일을 하게 될 듯도. 그러면 나는 다시 이 나라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게 될까.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것과 모으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한다. 내가 문구류나 휴대폰 등지의 케이스, 가방과 신발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과는 달리 누군가들은 각각의 수집벽 속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책과 머그를 좋아합니다. 확고한 취향이 있진 않지만요. 소서가 달린 티셋을 써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 집에 단 한 조도 없으나 다만 조라는 단위가 무척 귀엽다고 생각함 - 보관 장소가 마땅치 않고 내가 얼마나 쓸 것인가, 의 생각을 버릴 수 없어서요.
한 때는 차가 없는 사람과 약속을 잡지 않은 적도 있었는데. 나는 이제 모든 곳에 도착함에 앞서 주차장을 생각하는 사람이 피로하다.
어떻게 너는? 어떻게 너는. -내 모든 덕질의 근간이지.
서촌으로 이사한 모 동기의 초대에 샴페인 한 병을 들고 내 머릿속의 길과 실제 변화해버린 길의 변화를 더듬는 시간. 나도 낡고, 옛 길도 누덕해졌지만 새로이 탄생한 가게와 풍경과 빛과 햇살과 나뭇잎과 꽃을 즐기는 사람들은 또 환하고 반짝반짝하고.
어지간한 새로운 것들은 그럭저럭 맞춰가며 쓰는 편이지만 무선 이어폰은 정말이지 충전 너무 귀찮고.
너의 언어가 바랜 형태로 무너지는 걸 내가 참을 수 없어.
갓 졸업을 했던 동기가 작은 영화관을 운영할 때의. 이따금 자막과 음향 시설을 손 봐주던 내가 몇몇 영화에 명기된 국내 관객수 1인의 그 1인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웃게 한다. 선심 쓰듯 건네주던 동기의 영화표를 모을 만큼 섬세한 성격은 못됐지만 이따금 그 따스한 티켓과 매캐한 인쇄 냄새가 그리울 때가 있지.
이상하게 누추하고, 허물어질 것 같아서. 마음에 고인 이야기들이 많음에도 입을 다물어버리는 때가.
음식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어 실패도 도전도 새로운 유행에도 무심한 편으로, 맛이 없으면 말이 사라지는 남자나 음식을 앞에 두고 웃고 떠들고 또 화를 내는 누군가를 보며 지금 이 순간의 섭식과 그에 따른 기분에 주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보곤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기프티콘을 거의 받지 않고 하루 이틀 내 소모할 수 없으면 그냥 거절해버리는데. 이 거절 이후부터 환불까지 또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에.
어딘가의 맞은 편에 거울은 놓지 말고 현관에 해바라기를 놓고 등지의 출처 없는 이야기에 요즘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치밀어, 내 분노가 과연 어디에서 초래했는가를 가늠하는 즈음.
드디어 이 집에 첫발을 내딛은 남자의 첫 마디는 "교토에 있는 취향 잡다한 어느 중년 남자의 카페 같네." 남자의 부탁으로 당근에서 만 원 정도의 압력밥솥을, 삼만 원의 자전거 휠을, 만오천 원 가량의 서류가방을 구매한 뒤 지하철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말에 일주일치 따릉이 이용권을 선물로 보냈다. 이후 남자가 두고간 옷들을 모조리 굿윌에 기부하고 남자가 한국에 있는 동안 지불한 이천 달러 가량의 보험과 각종 고지서를 처리하며 일상과 여행의 아득함을 저울질했지.
잘 정돈된 음향을 좋아하여 콘서트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김연자는 정말 잊을 수 없지.


이 영화에 깃든 시간이 있는 이들과 함께 야외 상영을 본 것이 최근의 가장 기뻤던 기억.
재학시절 그럭저럭 알고 지내다 내가 조기졸업으로 바빠진 사이 소원해진 후배 몇이 이름 있는 배우가, 아주 명망 높은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늘 연출이 정말 좋다 생각했던 이들이 연기자가 되고 아이디어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기가 막히다 감탄했던 이들이 작가로서 자리매김하는 걸 보면 역시 좋은 것을 보는 눈은 정말 다 동일하구나, 하고. 십여 년이 넘도록 여전히 현직에서 글을 쓰는 동기는 웃으며 이야기한다. 사람은 여전히 어려운데 글 쓰는건 너무 좋아요, 언니. 너처럼 우직히 한 길을 걷는 이들이 세계를, 판도를 바꾸는 거겠지.
어느 학교를 다닐 때의 일. 운전 면허를 따고 난 직후 아무 생각없이 오십 만원짜리 승합차를 사서 아무 곳이나 몰고 다녔다. 높이를 가늠하지 못한 어느 터널을 지나다 윗 천장이 찌그러져 그 사이로 녹이 슬어 물이 새기도 하고, 한 달을 일한 알바비를 일주일 밖에 정산받지 못한 얄팍한 월급봉투를 가지고 국도를 타고 속초며 동해를 돌기도 했고. 한강변 자동차극장에 차를 세워두고 정신없이 자기도 하고. 이가 갈릴 만큼 추웠던 기숙사를 벗어나 한겨울에 난방을 틀어놓고 라디오를 듣기도 하다 결국 그 차를 폐차하던 날 얼마나 마음이 가라앉았던지. 내겐 정말 첫 운동화같은 자동차였어.
한 분야의 최고를 누려보았기에 다른 분야의 느릿함을 이해할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고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알기에 도저히 용납불가능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나날.
여름으로 접어드는 사위는 그저 따스하고, 밝고, 환하다. 내 마음이 이 셋 중의 하나이길.

내가 고요히 머무는 가운데 지구는 휙, 휙, 빠르게 돈다. 한 시간에 15도, 그것은 절대로 멈춰 있지 않는 속도다. 별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 눈을 휘둥그레 떴던 밤을 기억한다. 밤도 흐르는데, 계절도 흐르겠지. 나도 이렇게 매 순간 살아 움직이며, 인생을 따라 한없이 흘러가겠지. 내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도 밤은 흐르고 계절은 지나간다. 견디기 힘든 삶의 파도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물 아래 납작 엎드려 버티고 버텼던 내 몸을 달래며, 적도의 해변에 앉아 커피 한잔 놓고 눈멀도록 바다만 바라보고 싶다. 한낮의 열기가 다 사위고 나면, 여름밤의 돌고래가 내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아주 빠르게 나아가는 중이라고 잠시 멈췄대도, 다 괜찮다고.
-내 올해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