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vc 2022. 11. 9. 18:30

스무살 무렵 미의 감각 또한 제국주의의 잔재라는 소비에트 연방의 어느 논문을 읽고 한동안 아름다움을 보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던 때가 있었습니다. 소비 외엔 아름다움을 보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알 수 없고 근본 없는 내 기반과 경험 위에 쌓인 스스로의 미감을 믿을 수 없었던 시절.

특정 부위를 붉게 만드는 취향의 근본을 알 수는 없지만 보편적, 이라는 성애적 장면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모두에게 동일한 감각을 일으키는 아름다움도 있는 것일까요.

이런 생각을 떠올릴 때면 저는 "이게 바로 민주주의야It's a democracy!"를 소리치던 케노비와 "짐은 절대적 한계다! 네가 짐을 어떻게 하겠는가? 짐을 어쩔 텐가!"를 외치던 치천제를 함께 연상합니다. 너무나 거대한 것을 거론하기에 오히려 가냘파지고만 절대자들.

돌이켜보아도 무례한 빛이었다. 최선을 다해 빛에 얻어맞고 비틀거리며 돌아오는 길이었다. 응고되지 않는 말들, 왜 찬란한 자리마다 구석들이 생겨나는가. 너무 깊은 고백은 테두리가 불안한 웅덩이를 남기고. 넘치는 빛들이 누르고 가는 진한 발자국들을 따라, 황홀하게 굴절하는 눈길의 영토를 따라. 지나치게 아름다운 일들을 공들여 겪으니 홀로 돋은 흑점의 시간이 길구나. 환한 것에도 상처 입는다. 빛날수록 깊숙이 찔릴 수 있다. 작은 반짝임에도 멍들어 무수한 윤곽과 반점을 얻을 때, 무심코 들이닥친 휘황한 자리였다. 눈을 감아도 푸르게 떠오르는 잔영 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