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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지는 것을 의식하는 것과 그 의식을 알고 있는 것의 연관성과 과도한 의미 부여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비가 그쳤고, 날이 맑았고, 음식이 맛있었고 커피가 부드러웠고 차가 진했고 장소가 재미있었고 오가는 대화들이 아름답고 또한 지저분했으며 누군가의 정념과 다른 누군가의 열정을 응시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또 즐거워서.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필요없는 개개에 내가 너무 힘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문했던 나날이 우스러워질만큼 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좋아하는 분들의 일과 취미와 모임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나아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문장을 나누는 것이 흐뭇하여.
커피 한 잔과 함께 출근하여 그 커피가 식어갈 때까지 단 한 모금도 들이키지 못한 채 답장을 재촉하는 편지들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그 마음을 회고했다. 그렇듯 가감없이 이야기하고 입꼬리가 아플 만큼 웃고 헤드폰을 생각하지 않을 만큼 오래 타인의 이야기에 집중한 적이 최근 있었던지. 새로운 사랑을 이야기하던 수줍고 명징한 태도와 느릿하게 늘어지던 치파오와 라인 스타킹, 선명한 각을 지닌 구두. 한데 묶은 뒷목의 상기된 분홍색과 좋은 질감의 회색 스웨터, 누빔이 어린 장엄한 트렌치와 가는 어깨끈이 아주 예뻤던 짙은 갈색의 가방을 떠올리다 보면, 세상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는 마음이 연잇곤 하는 것이다.
모님께서 일컬어주셨듯 모든 인간을 싫어하는 마음으로 인류를 사랑하곤 하지만 이 순간의 아름다움과 거절할 수 없는 세세한 즐거움에는 언제나 항복, 항복을 외치고 만다. 후죠와 타쿠, 그리고 비평가가 함께하는 이 농밀하고 젖고 깊은 세계들.
-반대로 유대인은 신의 편이다. 그리스 사람이라면 욥과 같은 말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온전하고 정직한“ 욥은 ”까닭없이 그를 친“ 뒤 폭풍우를 타고 나타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주께서 못하실 일 없사오며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회개라고? 뭘 회개한단 말인가?
그와는 대조적으로, 작자 미상의 욥기가 쓰인 5세기에 활동했던 위대한 그리스의 시인 아이스킬로스는 프로메테우스 - 그 역시 낚시로 리워야단(레비아단)을 끌어내고 그것을 새를 가지고 놀듯 하며 많은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는 신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 에게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을 하게 만든다. “그는 괴물이오. 나는 제우스에게 아무 관심이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하시오.“
오늘날 비록 우리의 혀는 욥처럼 말하라고 배웠어도 우리 마음은 프로메테우스처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