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vc 2017. 12. 28. 12:27

서사란 관중 앞에 선 이야기꾼이 지녀야할 가장 큰 무기이긴 하지만, 때로는 인간과 삶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수천 수만의 이야기를 - 비록 기승전결은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허나 탄생과 죽음 외의 온전한 시작과 종결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 대신할 수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욕심을 내고, 그렇기에 되풀이하여 다루어지고, 관점에 따라 시선을 틀지만 큰 방향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인류 역사상 인간들, 의 품위가 빛을 발했던 몇 안되는 순간을 다루며 감독은 수많은 개인과 집단을 빌어 자신을 털어놓습니다. 


짧은 연결의 순간을 지니는 플롯 셋의 큰 뿌리를 통해 감독은 이런 일이 있었다, 라는 여느 에피소드로 마무리됨이 아닌 인류사 전체를 관통하는 메세지인 개인의 신념이 집단을 이룬 상태의 호전성, 그에 부가된 긍정성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삶이 지속되는 한 어디에도 절대적인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 이런 감독이 전무후무한 조커를 만들었고 - 우리는 또한 저열한 존재이기도 허나 때로 신념에서 피어오르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만큼 고결한 존재이기도 하다, 라고. 


저는 언제나 전자쪽에 손을 들어주는 편이었지만 그 위로와 연설에서 밀려오는 감정이 없지는 않았다는 것이.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장미가 가장 아름다움은 지당하고. 


제가 배우라면 정말 한 번쯤은 욕심을 내었을. 


지금까지의 전작이 그러했듯 감독이 이끌어가는 전개를 쉽게도 예상했음에도 최대한 스스로의 목소리를 절제하고 인물들을 이야기한 것 또한. 그렇기에 오히려 이 낯설고 새로운 - 익숙한 얼굴들이 주는 묵직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배우들이 부각된 것이 저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배경 음악은 문제가 많았지만 사운드와 편집의 합이 무척 좋더군요. 언뜻 거칠 수도 있는 편집의 앞뒤를 굳건하게도 떠받치는 무게감 있는 사운드.   


이런 젖고 서늘한 스코티쉬 금발 미인 조종사가 Afternoon, 을 한다고 왜 아무도 내게;_;?


조종사를 보는 순간 소년의 얼굴에 첫 눈에 반하다, 의 감정이 드리워지는데.


참전해 전사한 형과 과거를 지닌 아버지의 그림자를 동시에 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