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vc 2023. 2. 25. 09:34

뭔가 습한 걸 보고싶었던 날.

조부가 우는 걸 본 기억은 단 한번이다. 놀랄만큼 어린아이처럼 흐느끼던, 꿈인가 싶어 내 손등을 꼬집었던 비현실적으로 선명한 기억과 아버지의 죽음.

슬램을 좋아하긴 하지만 팬의 입장 이상으로 깊게 빠져들지 않는 이유는 나도 운동을 했었기 때문에. 그 기쁨 못지 않은 어둠을 알고 있으므로 마냥 그 즐거움에 몸을 던질 수 없어서.

아름다운 창작은 창작의 한계가 있고.

그럼에도 죄책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오래 생각했지.

평론가는 형편없는 작가에게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고 세상은 전혀 가치 없는 자에게 열광할 수 있지만 두 경우 모두 오래가지는 못한다. 세상의 어떤 작가도 상당한 재능없이 에드워드 드리필드처럼 오랫동안 대중을 사로잡기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선택된 자들은 대중성을 비웃는다. 그들은 대중성을 평범함의 증거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후대 사람들의 선택이 한 시대의 무명작가들이 아니라 유명한 작가들 중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불후의 명작이 언론의 외면 속에 사장되는 일이 계속되어 왔을지 몰라도 후대 사람들은 그 존재를 알 길이 없다. 또한 후대 사람들이 지금의 베스트셀러를 모조리 폐기 처분하더라도 결국 무엇을 고른다면 지금의 베스트셀러 속에서 고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