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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배는 말한다. 솔직히 나이 많은 후배가 들어오면 우리도 편하지는 않지. 사측에서 어떤 의미로 뽑았는지는 알겠는데, 일단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래. 불편하지. 또 너무 스펙이 좋으면 그냥 잠깐 있다 나갈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선배가 이야기하기도 한다. 듀티 동안 해결해야 할 일 자체가 너무 많고, 막내가 부담해야 할 잡다한 일은 또 더 많고. 나이 먹은 신규는 어렵다, 는 말은 편하게 시키고 혼내고 부려먹기에 불편하다는 뜻인 것 같기도 해요.
아무런 생각이 없는 나를 가운데 두고 수없이 오가는 설왕설래들.
-반듯한 이마와 속을 알 수 없는 눈동자, 고집 센 턱을 가진 전형적인 오스틴의 얼굴이라 생각했던.
내가 부러워한 소설가들의 목록. 김해경, 줄리언 반스, 폴 오스터, 스티븐 킹, 로맹 가리...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다른 자아를 내세워 쓴 소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쓴 소설을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던 십대 후반부터 나 역시 친구에게 편지 따위를 보낼때는 '衍'이라는 서명을 남기곤 했다. 왜 그런지 몰라도 이상의 단편소설에서 발견한 이 한자가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건 다른 이름으로 글을 쓴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았다. 내게 글을 쓴다는 건 애당초 다른 존재가 된다는 뜻이었던 셈이다.
가명으로 소설을 쓴 다섯 작가 중에서 줄리언 반스와 폴 오스터만을 따로 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둘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두 개의 이름으로 소설을 쓰되, 본명으로는 너무나 진지한 소설을, 가명으로는 대중적인 문체로 추리소설을 썼다는 점이다. 줄리언 반스는 댄 캐버나라는 이름으로 네 권의 추리소설을, 폴 오스터는 폴 벤저민이라는 이름으로 [스퀴즈 플레이]라는 추리소설을 출간했다. 이 일의 교훈은? 추리소설로 돈을 번다는 건 줄리언 반스나 폴 오스터에게도 힘든 일이라는 점. 하지만 돈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자기가 좋아하는 소설을 쓰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지.
이번에는 줄리언 반스, 한 사람만 남겨놓겠다. 그는 내가 몹시도 부러워할 만한 일을 하나 더 했는데, 그건 소설가가 되기 전 사전을 편집했다는 이력이다. 이십대 초반 그는 편집자로 일하며 삼 년 동안 옥스퍼드영어사전(OED)의 4권짜리 보충판에서 C에서 G까지의 표제어들의 뜻과 초기의 용례 등을 편집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내게는 그런 이력 하나쯤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소설가에게 단어란 화가에게는 색채와 같은 것이니까. 사전을 편집했다면 다른 소설가보다 훨씬 더 많은 단어를 가졌다는 뜻이니까.
논의 중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었는데, 이미 하고 있었구나.
사진이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면, 회화는 다른 시대 - 주로 과거의 - 를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좋아합니다. 사진이나 영상에의 동화와는 사뭇 다른, 객관적 견지에서의 고요한 경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