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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이는 거리 한복판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전화번호를 요구하는 남자들의 거대한 자신감이 질릴 때가 있다. 비행기 옆좌석, 카페, 펍이나 바 등지에게 가벼운 이야기와 함께 무언가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 서로의 명함을 주고 받거나, 혹은 명함을 받으며 다시 이 곳에 오게 된다면, 또는 어느 시간이 맞는다면 연락해. 커피나 한 잔 하자, 는 스침을 통해 만난 인연도 많고 그렇기에 꼭 챙기게 된 사람도 적지 않다. 일을 할 때 건너 건너 도움을 받은 경험도 더러 있고.
하지만 당당하게 번호를 요구하는 그 뻔뻔함은 뭘까. 이른바 간택과도 같은, 이런 내가 너를 선택해줬으니 너는 내게 반드시 번호를 알려주고 내가 내키면 너에게 연락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줘야한다는 그 기이한 자아, 비틀린 자신감.
이 나라의 저변은 언제까지 이 비대함을 불릴 셈인가.
굉장히 불쾌한 영화였다. 무지ignorance와 순진함naiveness로 세상의 위선과 위악을 감추거나 드러내는 방식 자체가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새삼 알게 되었고, 저런 식으로 아역을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다시금 생각했고. 노골적으로 이런 시선을 등장시켰던 영화 Room, 또한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등장인물들에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품위dignity는 있었다. 3년이라는 연구 기간 동안 차라리 다큐멘터리를 찍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을.
플라톤이었나. 보다 낮은 것을 일컫기 위해 보다 고결한 것을 불러와서는 안된다. 그것이야 말로 미혹이다, 라고,
이런 시기까지 여성과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비극을 멋대로 - 관음성을 비롯하여 - 다루는 영화를 보고싶진 않았다, 정말.
좋아하는 영화 감독은? 이라는 문장에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이름 몇개를 제외하고, 기술적으로 영화라는 매체를 가장 잘 다루는 감독은 Soderbergh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연기 연출, 리듬, 촬영, 미술, 음악, 스피드, 그 신적인 편집. 적어도 보고난 뒤의 찜찜함 없이 말끔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재밌는 이야기에, 잘 만들었고, 좋은 배우들의 말끔한 연기가 있으며- 관객들에게 지금 앉은 그 시간 외엔 아무 것도 요구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그것이 한계이자 장점이라는 것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