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vc 2018. 3. 20. 00:14

배가 부르면 감각이 예민해지기에 멀미에 취약해지곤 한다. 취하거나 배가 부르면, 혹은 감각이 고조되면 무작정 뛰거나 걷고 싶어하는 것 또한 오랜 버릇. Locatelli를 들으며 비가 오는 도산대로를 30분 가량 걸었다. 아무도 없는, 내 발로 걷고, 뛰고, 물웅덩이를 넘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비와 공기와 바람과 주변의 냄새를 맡고, 내 몸의 무게를 지닌 무릎과 발목의 부담을 알고, 좋아하는 노래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아주 천천히, 하지만 끈질기게 젖어가는 어깨와 발끝의 감각을 느끼고.


샤로수길을 처음 방문했고. 이미 정착된 명칭을 과도하게 간지러워하는 것 또한 배반적 태도라 생각했으며. 


분명한 질감, 미감, 시각적 호사를 함께 겸비한 음식은 맛있었고, 달고 또 달아서 입술에서 식도까지의 선명한 길을 만들고. 


웃음은 형태를 지니고, 말은 스러지지만 감정은 남아 불이 닿은 것 마냥 짙고 깊은 자국을.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매양 믿을 수 없을 만큼 짧고, 강렬하고, 아쉽기만 해서. 좋은 기억 이후의 나는 한동안 나누었던 대화와 화제들을 조각조각 분류하여 어딘가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채워넣는 작업을 하곤 한다. 


모님의 글이 완결난 것이 기뻤고.


두 분의 상처가 흉이 지지 않기를 살짝 기도했으며.


주물팬, 무쇠솥, 기자 식도. 호시탐탐 내 방안에 요리기구를 들이려 안달하는 남자에게 그만 좀, 이라는 메일도 보내고.


가장 오래된 책. 이미 덮어 책장 속 어딘가에 단정하게 숨겨놓은, 내 연모와 취향과 향수의 원전.


돈을 받는 글을 쓰고 있기에 다른 글을 쓰는 것이 주저된다는 말씀에 Elementary에서 NA에서 내뱉은 자신의 말들을 허락없이 인용한 블로그를 발견하고 익명성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하며 식은 모습을 보이던 Holmes가 떠올랐는데. 나도 그랬다. 돈을 받는 글과는 다른, 그저 내 감정과 기억만으로 아는 이들에게만 열어놓았던 채널을 누군가 허락없이 인용하고, 돈을 받는 출판물을 냈을 때. 정말이지 용납이라는 말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수도 없이 용서와 이해라는 천칭 사이를 갈팡질팡했음에도 종국의 나는 내 의도와 본질에의 폄훼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저는 아주 즐겁게, 몇년이 지나더라도 모님의 개인지와 모님의 출판물을 기다릴 겁니다.  


-주어지는 역할의 가벼움이 아쉬울 만큼 연기의 묵직함이 있음. 그 행동언어의 우아함 또한. 


많은 이들을 객쩍어하는 나이지만 누군가 만두, 라는 검색어로 내 블로그를 찾는다면 뜬금없이 아주 기쁠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