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vc 2018. 4. 13. 07:35

둘이 개처럼(...) 싸우며 사귀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깼다ㄱ- 전장의 모든 감정은 쉽게도 임계치에 다다랐다. 어느 샌가 무게가 실린 손마디에 식어 서늘한 입술이 비벼질 듯 스쳤다. 장난이라고 웅얼거리던 턱 끝이 쉽게도 돌려진다. 격렬하게 쥔 멱살과는 달리 입천장을 훑어오는 혓바닥은 몇번이고 멈칫거렸다. 먼저 등을 기댄 것이 어느 쪽이었는지는 모른다. 잘 다려진 모직 셔츠 아래로 스민 손바닥만이 뜨겁고, 생생했다. 


손 닿는 곳에 놓여진 동경은 어딘가의 질척한 연정과 닮아 있었고, 어쩔 수 없이 휘말린 앳된 볼에 대한 연민은 절로 뺨을 더듬는 애정과 별 다를 것도 없었다. 이 자연스러운 시작에 대한 기억은 누구에게도 드물었다. 언제나 문제는 그리고 다음에서 비롯된다. 검고 흰 십자에 대한 살의보다 스스로의 계기판에 대한 수식이 먼저 요구되는 삼각 편대의 양 끝에 자리한 만남은 늘 위태롭고, 또한 날카로웠다. 준비조차 없는 서로를 가르기에 충분할 만큼.


그동안 자신이 이룩한 성城을 내게 보여주고픈 욕망과 다른 이들에게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남자의 열정은 정말 사랑스럽고 같잖은 구석이 있어서.


부인할 수 없는 아름다움처럼, 언제나 옳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연히 자리한 어느 신부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용서란 단 한 번이 아니라 그 사건과 사람, 그리고 감정이 떠오를 때 마다 해야 하는 것,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는 이제 피곤해서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데, 그냥 잊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요? 라는 내 물음에 용서란 망각에 기댈 수 있는 존재도 어느 하나의 커다란 귀결도 아니며, 온전히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 몇번이고 노력하는 과정입니다. 말을 덧붙이는 신부님을 보며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 또한 성실이 동반되는 일종의 과정이구나, 하고.


내게는 없는. 


-이렇게까지 온전히도 생생한, 그 되풀이되는 격렬함이 사랑과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