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숨이 멎는.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느끼고 난 뒤 무언가를 살 기회가 있을 때. 남자에게 뭐 필요한 거 있어? 라는 문자를 보내면 남자는 늘 한 점 망설임 없이 내 이름으로 된 답장을 보낸다. 이따금은 그 대답에 사정없이 마음을 파이곤 한다.
싫든 좋든 남자와 함께 동석해야만 하는 자리가 있고, 타인의 과거와 자신과 엮인 현재,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지리한 미래와 그 전망에 관한 사설들을 대부분 좆도 신경쓰지 않는 남자이기에 결국에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를 치고, 웃어주고, 안타까워해주다 어떤 종류의 명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내가 된다. 듣는 것과 정의내리는 것, 타인의 평가를 꺼려하는 편은 그다지 아니지만.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괴롭혀가며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어느 중국인을 만났다. 나와 남자가 함께 어렴풋이 아는 지인 중 하나는 그 사람의 끈질긴 추적과 괴롭힘에 도망치고 도망치다 결국에는 죽음을 택했다고. 남자는 늘 이런 종류의 사람들의 구애를 받는다. 작고, 선하고, 착실하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늘 끈질기게 귀엽고 똘똘한 아는 동생 - 언제나 나보다 아래인 - 으로 자리할 것 같은.
내 예상보다 그 사람은 더 정중하다. 최근 담배가 늘어난 나를 위해 별도로 공간을 마련해주고,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기억했다 다시 주문해주고, 이번에는 우리가 대접하고 싶다는 이야기에 늘 고마워하고 있다는 다정한 답변으로 기나긴 영수증의 계산을 대신하고. 생각치도 않은 곳에서 어렵게 자리를 잡게 된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들추다 마지막까지 우리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꺼내고, 근처이니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라는 말을 산뜻하게 거절하며 자신의 자동차에 오른다. 죽을 지도 몰라 어느 지역에는 갈 수도 없는데 나와 남자가 거주하는 구역이 이곳이라 다행이라는 농담을 덧붙이며.
친절하네. 응, 나한테 잘해줘. 지난 만남에 대한 복기도 없이 욕실로 향하는 남자를 보며 생각한다. 남자는 언제나 다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단순한 명석함이나 재기, 지닌 재산 - 있냐; - 이나 배경, 학벌이 아닌, 처음부터 사랑받았고 지금까지도 사랑받음이 마땅한 그 자연스러움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나쁜 사람이고 싶지 않은, 어느 한 군데 전혀 다른 곳에서는 그저 좋은 사람이고 싶은- 나 또한 여느 사람처럼 사랑할 수 있다는 그 인간다움 때문에.
스스로가 아닌 타인으로 이루어진 이 오만이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