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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꿈 꾸는 자의 얼굴.
일상적 언어에는 수많은 완곡어법, 인사의 말투, 넌지시 하는 말투, 암시법, 약정적인 표현법이 있다. 말투가 솔직하고 자연스럽고 표현적이기를 우리가 요구할 경우, 우리는 어떤 살롱에서 통하고 있는 세세한 점들을 버리는 것이며 대상들을 바로 그 대상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호칭은 새로운 울림을 가지고 있다. 이 경우에 우리는 '바로 그 말이야'라고 말한다. 우리가 대상을 가리키기 위해서 그 이름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게 되자 마자, 우리가 표현이 강한 명칭을 얻고자 할 경우에는 거꾸로 은유, 암시, 비유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대상을 더욱 민감하게, 보다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시 말하면 우리로 하여금 대상을 알게 할 수 있는 적확한 말을 찾게 해줄 경우, 우리는 우리에게 습관화되지 않은 어떤 말, 적어도 이 문맥에서는 약속을 어긴 어떤 말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예기치 않은 말은 표상적 명칭이며 동시에 고유의 명칭인 것이다.
-이 문단을 읽다, 수많은 별명과 단 하나의 본명을 생각해본다. 인지된 존재로부터 파생된 갖가지 기억, 명사, 비유. 보다 간접적으로 달리 표현되지만 결국 본질은 단 하나의 너, 당신의 이름, 내 안의 존재, 그리고 내부에서의 외부의 부름.
인간이 하나의 다른 타인을 자신의 인지 너머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존재하기는 할까. 우리는 응답 없는 신조차 우리의 것으로 해석해버렸는데.
어쩌면 인류가 남긴 모든 기록의 의미는 자신을 넘어선 지평 너머의 객관화에 대한 열망일지도.
그리하여 모든 먼 존재는 내려다 볼 수 있는 하늘에, 우리는 여기 지평에 발을 딛고 맞선 사람의 눈을 직시하며.
-Kiss me, my girl, before I'm s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