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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겸 조연이었던 자신의 전작 여성 배우를 데려와 주인공인 배우 겸 감독과 미묘한 관계를 잣는 - 자신이 만든 음식을 섹시하게 음미하는 - 여성 역할을 맡긴 남성 감독의 욕망이 너무나 투명하여 정말 큰 웃음이었던.
남성 감독과 여성 배우의 권력 관계는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전근대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들 감독은 또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핑계로 이 권력을 포기할 생각을 1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 제작자들이 더 많은 비율의 여성 감독, 배우, 스텝, 시나리오 작가를 불러오는 수 밖에 없음.
나는 영화 외적인 인터뷰 혹은 홍보 영상 등지에 정말 관심이 없는 편인데 - 언젠가부터 쿠키도 안 보기 시작함. 굳이 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본작에서 - 이런 내게도 완전히 새로운 영화는 없구나, 싶은 생각이. 어떤 경로로든 배우와 감독과 원작 혹은 시나리오의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이 영화는 보고싶다 혹은 이 영화는 봐야겠군, 이라는 마음을 먹게 되는 과정 상에 어떤 것들이 내게 가장 큰 채널로 작용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음. 그 정보들을 어떤 방식으로 취사선택할 것인가까지도.
언젠가 전혜린? 의 수필에서 모국의 남성들은 절대 누구에게도 길을 묻지 않는다, 라는 문장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최근의 생각으로는 모국의 남성은 무언가를 묻고 상대방의 답변을 받아들인다, 는 행위 자체가 자신이 유지하고 있는 지위의 공고함을 깎아먹는다고, 소위 지는 것이라 여기는 듯함. 너 나를 좋아하니? 너 오늘 밤을 나랑 보낼 생각이 있니? 너 내가 마음에 안 드니? 이러한 질문과 돌아오는 상대방의 답변을 감내하지 못해 어떻게든 지레짐작으로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혹은 무시하며, 멋대로 일을 저지른 뒤 결국은 네 행동이, 말투가, 네 모든 것이 내게 이런 식으로 작용했다. 라 책임을 떠넘김.
물어보는 용기와 받아들이는 책임 없이, 그저 자신에게 긍정적인 결괏값만 한껏 누리고자 하는.
-먼 곳이었기에, 그저 큰 빚을, 다른 방식으로라도, 라는 서두를 생각하다 문단을 접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놓치지 않겠습니다.
언젠가의 글 하나를 불러와 봅니다.
딱히 무언가를 분류하거나 경계를 짓고 싶지도, 그 주체와 행동하는 방식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음. 아무나, 하고 싶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럼에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됨. 따르고 싶으면 따르고, 따르고 싶지 않은 사람은 또 저마다의 방식을 찾으면 됨. 이 과정에서 존중되어야 할 오로지 한 가지는 앞서 나간 족적을 폄훼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함.
이런저런 소개와 계기로 여성들의 대화, 라는 지역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정확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화가도 시나리오 작가도 음향 감독도 일러스트레이터도 학생도 변호사도 안무가도 점원도 수의사도 봉사활동가도 있는 이 곳에서의 내 포지션은 다른 문화의 배우자를 둔 이방인.
정말 많은 이야기를, 생각을, 삶의 방식을 훑으며 이렇게 시간과 기록은 역사를, 연대를 이룩하는 구나, 하고.
언젠가 여유와 허가가 생기면 그 녹취들을 타이핑할 생각도.
[주인공에게 주어진 시간이 딱 이틀이라는 게 신경 쓰여요. 인간의 시계에 자기 스케줄을 맞추어 주는 친절한 전염병. 그래요. 우린 같은 행성을 공유하고 있죠.] -이 네 문장의 매혹이.
너무나 격렬하게 그 음악과 이 사람을 사랑했지. 신이 이런 모습이라면 정말 기쁠 것이라 여길 만큼.
This will be my last confession
"I love you" never felt like any blessing
Whispering like it's a secret
Only to condemn the one who hears it
With a heavy heart
Heavy, heavy, I'm so heavy in your arms
I was a heavy heart to carry
My beloved was weighed down
My arms around his neck
My fingers laced to cr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