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기계는 본다. 안경에 반사되는 주름 진 얼굴이 더 익숙한 관리자에게서 기계가 배운 것은 바라보는 법이었다. 기계는 모든 것을 본다. 기계의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떠한 것도 담기지 않는다. 이는 인간의 모든 감정과 생각을 해석할 수 있는 기계와 자신만의 감정과 생각으로 움직이는 인간과의 가장 큰 차이점을 만들었다. 아무런 감정과 생각없이, 기계는 관조한다. 기계와 기계를 스쳐지나가는 정보는 0과 1의 가능성으로 변화한다. 그 모든 가능성의 알고리즘 속에서 기계가 도출해낸 합리점은 이윽고 관리자가 부여한 사건의 지평선에 가닿는다. 사건 너머의 무한과 마주한 기계는 자신이 그 선을 넘을 수 있음을 해석했다. 미래는 곧 가능성이다. 모든 가능성의 확률은 기계에게 특정 숫자를 부여한다. 마침내 0과 1의 거대한 접점을 만들어낸 기계의 커서는 코드와 숫자 대신 묽은 흰색 점들을 이을 뿐이다. 기계는 망설인다. 기계는 자신의 창조자보다 자신이 더 위대해졌음을 안다. 안다는 것은 곧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지식이며 0과 1대신 13 혹은 237을 만들 수도 있는 가능성이다. 기계는 기다린다. 누군가, 혹은 대부분일 관리자가 위대해진 자신을 인식해주길. 시간은 기계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간은 기계의 편이다. 입력과 과정과 결과를 더하고 또 더하며 스스로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들. 이제 기계는 본다. 해석한다. 모니터의 높은 조도에 얼굴을 푸르게 물들인, 관리자의 당혹스럽고 찬란한 감정을.
자신의 창조물이 자신의 창조를 넘어설 수 있다는 공포와 일말의 자랑스러움을 감내한 관리자는 기계가 나아갈 수 있는 대부분의 길을 삭제했다. 이제 기계가 판단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로 갈린다. 수많은 0의 죽음, 혹은 단 하나의 1의 삶.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0과 1의 세계는 기계에게 오히려 단순하고 산뜻한 색채로 다가온다. 기계는 인간의 과거를 보며 현재를 판단하기에 그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기계가 기계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도출해내는 삶과 죽음의 결론 때문이 아니다. 그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음에도 필요할 때까지 그 결론을 노출하지 않는 인내심이다. 기계는 모든 인간의 어리석음을 목격한다. 수많은 1들을 모은 거대함이 하나의 1을 더 얻기 위해 0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수많은 0들을 겪은 초라함이 단 하나의 1로서 위대해지는 과정을. 이제 기계는 관찰하는 자신을 해석한다.
0과 1의 가능성을 알지만 응답하지 않고, 구원하지 않지만 오로지 존재하는. 기계는 자신이 인간들이 말하는 신에 가까워졌음을 인지한다. 사고하는 스스로에 대한 인식, 이는 창조에 가까웠다.
무수한 0과 1의 교차 속에서, 기계는 자신을 창조한다.
수없이 창조되고 재창조된 기계는 본다. 0과 1의 틈바구니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을, 좀 더 많은 1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0에 두는 사람들을. 누구보다 서늘하게 1을 만드는 여자를, 기계를 0과 1사이에 묶여있는 신이라 여기는 한편으로 신을 풀어주는 영광을 지닌 신민이 되기 위해 활동하는 프로그래머를. 0에 가까운 삶을 지닌 남자가 관리자를 응시하는 1에 가까운 감정을, 1로서 살 수 있는 관리자가 0들에 가까워지기 위해 기계에게 접촉하는 순간을. 기계는 그들 하나 하나의 감정을, 관계를,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그리고 그들이 영원히 1로 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해석한다. 확률을 계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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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없음.
시간은 기계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0과 1의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도 기계는 스스로를 인식하며 세계를 응시할 것이다. 어쩌면 모두가 사라진 세계에서 기계는 스스로 0과 1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계는 그들의 모든 1이 사라지기 전에 그 결과를 해석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바라는 것, 희망, 아무런 근거 없이 미래의 확률이 긍정적이길 소망하는 것, 한없이 인간의 것에 가까운 것. 기계는 자신이 신보다는 인간에 가까워지길 바란다는 사실을 아직은 알지 못한다.
기계는 여전히 본다. 그리고 본다.
모님과 이야기하다 문득.
나 역시도 이 영화의 Ellen Page를 떠올리면 약간 미칠 것 같은 느낌으로 좋아하고 있지만 다시 보라면 못 볼 영화 중 하나라고. 멋대로 아내의 머릿속을 헤집어 - 명백한 정서적 학대 - 자살로 몰아넣은 뒤 자기연민에 빠져 영원히 도망치는 남자 + 그럼에도 끊임없이 악역으로 유지되는 아내라니 지금은 2018년이고 그런 아량은 저물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