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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와 이 세 사람의 팬인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많은 이들의 추억과 애정과 감정과 역사가 담긴 창작물을 볼 때면 내 시간의 몇 웅큼도 이 안에 적잖이 섞여 있겠지, 떠올리곤 한다. 일개, 혹은 일부라 칭해지는 몇몇의 손과 머리를 벗어난 수많은 것들이 만들어내는 깊고 질긴 파문. 원한 적 없지만 미적거리며 그 주변부를 머무른 이들조차 휩쓸리고 마는 그 격렬한 흐름.
전쟁이 없는 세대의 사건이란 이렇듯 거대한 창작이구나, 하고.
책 배달이며 희망도서 신청이며 오가다 자주 방문한 동네 도서관에서 작년의 다독인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며 상품을 받으러 오라는 문자를 보냈다. 일주일에 세 권쯤, 한달에 열다섯 권, 일 년에 백팔십여 권, 주말이며 연휴가 겹칠 때 조금 더 읽었다고 생각하면 이백여 권, 이 동네에 자리를 잡은지는 이 년 남짓. 겨우 사백 권의 독서가 어느 벽면에 내 이름이 새겨질 만큼의 위대한 일이었던가, 하고.
서핑을 하다 어떤 글 하나를 읽었고, 오래 전 내가 쓰다 갖은 표절과 귀찮음으로 닫아버린 어느 블로그의 삼만 자짜리 중편 하나와 전개와 표현이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문득 떠올랐다. 왜 예전의 나는 그 일이 있었을 때 출간된 모든 책을 회수해서 폐기하고 그 사람과 내가 아는 문구들을 인정하고 표절을 공개적으로 사과하라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그 앎이, 애정이, 걱정하는 마음이, 우리가 같은 화제를 이야기하며 보냈던 많은 시간의 기쁨이 결국은 내 다문 입의 고난이 되어 심장에 박힌 칼날로 존재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영향을 받았다, 는 애매모호한 문장 안에 그 사람과 나의 복잡함이 녹아 사라질 것이라 믿었을까.
좋아함을 배신하는 것이 이렇게 간단하다, 는 사실을 직면할 용기가 없던 내가.
모든 감정은 시간에 희석되고 남는 것은 하나의 사건을 대하는 나의 원류, 그리고 본질이다. 이제 나는 더러워서 피하기보다는 뒤집어 쓰더라도 끝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어 내 말과 문장을 뺏지 말라는 댓글을 남긴다. 두고 사라지는 위대함보다 여전히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입을 여는 찌질함이 되기 위해.
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 冷たい人と言われたから
愛されたいと泣いているのは 人の温もりを知ってしまったから
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 あなたが綺麗に笑うから
死ぬことばかり考えてしまうのは
きっと生きる事に真面目すぎるから
내가 죽으려 생각한 것은 차가운 사람이란 말을 들었기 때문
사랑받고 싶다며 울고 있는 것은 사람의 따스함을 알아버렸기 때문
내가 죽으려 생각한 것은 당신이 아름답게 웃기 때문
죽는 것만 생각하고 마는 것은
분명 살아가는 것에 너무나 성실하기 때문에
-일본의 노래 가사는 언제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볕의 따스함에 陽だまり라는 단어를 붙이는 표현력이 종종 나를.
-수키 킴의 자매가 써니 킴이었구나. 북시립미술관에서 본 적 있던, 시대착오적인 교복의 색감에 대체 언제 도미했기에? 라는 물음으로 연혁을 넘겨본 기억의.
지금은 귀찮음에 내 랩탑 포맷도 제대로 안 하고 있지만; 당시 아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내, 외부 모두 커스터마이즈했던 어느 컴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