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가게에 앉아서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착한 아이구나” 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나는 인정받기를 원했고, 오래전에 내가 신발 끈을 묶고 스웨터의 단추를 채우는 법을 익혔을 때, 만족스러워하던 그의 얼굴에 떠오르던 환한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 표정을 보고 싶어서 여기에 왔지만, 끝내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빴고, 정말 더웠고, 많이 아프기도 했고,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로 즐겁기도 했던.
코 끝을 아리게 하는 초가을의 공기를 그리워하면서도 아침잠을 깰 때마다 온 몸을 침대로 잡아끄는 서늘함이 없다는 사실에 아직은 안심하게 되는.
여전히 과한 것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조마조마함이 없지는 않고, 이직한 곳의 장점과 단점을 밤새도록 꼽을 수도 있지만. 내가 친절하고 싶을 때 친절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정말 마음에 든다. 마음껏 친절하고, 눈치 보지 않은 채 멋대로 웃어드리고. 네가 그러면 다음 사람이 불편해져, 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우울해하는 어머니를 위해 직장 경험은 아직 없지만 지난 30년간 가정에 충실했으며 이제는 새로운 일을 찾아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로 시작하는 이력서를 어느 취업 사이트에 등재했고, 이후 주부를 우대하는 어느 기업이 그 문장을 마음에 들어해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으며 짧은 면접 뒤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 어머니가 많이 밝아지셨다는 이야기에 내가 얼마나 대단하다, 를 연발했는지.
너는 정착 없는 너의 삶이 부모님께 누가 될까 언제나 걱정을 했지만, 여러가지를 듣고 있는 내게도 너의 것만큼 굉장한 이야기는 정말 드물었어.
약간 취한 상태로 배가 부르고 내가 운전하지 않는 차를 30분 이상 타면 높은 확률로 멀미를 한다. 내게 밀어주신 타다끼를 두고 돌아서야 하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더러는 걷고 더러는 버스를, 또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시 걸으며 다음에는, 다음에는- 이라는 생각만.
선거와 과거 이야기를 되새기며 혼자 즐거웠던.
우리는 모두 어떤 옷과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사랑은 때로 매우 굳건하다. -내게도 이런 옷이 있다. 처음 가본 백화점에서 한달 아르바이트 비를 모두 털어 샀던, 진한 녹색의 베네통 니트. 소매 끝과 팔꿈치, 양 겨드랑이가 모두 닳아 날캉날캉 부드러워진 올이 굵은 그 옷을 나는 아직도 이따금 꺼내 입는다. 최저임금이 1,865원이었으며 하루 10시간을 꼬박 일해도 40만원을 채 벌지 못했던 때의 내 하루를 떠올리며, 그럼에도 여전히 그 생생한 색깔을 놀라워하며.
최근 배경음악처럼 틀어놓는 곡은 조성진의 달빛.
기억을 잠식하는 것은 늘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다. 하지만 내가 서울에서 가장 아끼는 풍경인 뚝섬유원지와 청담 사이를 지나는 한강 강변을 바라볼 때면, 내가 얼마나 이 도시를 사랑하는지를 새삼 깨닫곤 한다. 아주 좆 같음과 약간 덜 좆 같음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난 과거가 쌓아올린 지금의 나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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