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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한.
AI와 목소리 계약을 했다는 어느 배우들의 뉴스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 현실세계의 불순물은 평평하고 반듯하게 처리된 가공 아래서 소리도 없이 썩어가겠다고.
내 비루함이 부끄러운 적도, 딱히 자랑스러운 적도 없지만 이제는 그 과거 이야기를 내뱉는 것조차 누추한 나이가 되어.
더 말을 줄이자, 매일 생각한다.
모두의 선의에 기대어 간신히 숨을 쉰다.
이갈이로 닳아버린 어금니에 두어번 보톡스를 맞은 기억이 있다. 도저히 효과가 없어 간격을 줄이면 좀 더 나을까요? 내 물음에 담당의가 답했다. 볼패임이 생길 겁니다. 의아한 내가 볼패임은 상관없는데요, 대꾸하자 돌아왔던 그 난처한 얼굴. 나이가 들어 생긴 눈자위의 꺼짐도, 이마의 주름도, 흐릿해진 인상도. 내가 원해서 가진 것이 아니었기에 깊은 관심을 둔 적 없는 것들에 훈수를 두거나 충고를 하는 사람들을 늘 이해할수 없었고, 내 시간이 쌓인 이후에야 비로소 정립하게 된 내 얼굴과 내 몸을 간신히 신경쓰는 나날.
많은 것들에게서 도망쳤기에 그를 만류하는 갖가지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제는 그만두겠다는 이야기에 나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흥미롭기도, 두렵기도. 여기를 떠나 어디를 가겠냐는 이야기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멋대로의 대답을 남기며 혼자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이, 약간은 쌓아올렸지만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이 상태가 항상 저의 전부였어서. 사라짐도 버림도 잃음도 포기함도 언제나 내 책임과 선택이었기에 나는 미래를 준비한 적 없었노라고. 언제나 내 뜻으로 삶을 놓을 수 있는 자유 아래 나는 이 모든 행과 불행의 현재를 견뎌왔었다고.










집에 오자마자 중고 매물을 뒤져 원래 값보다 비싼 DVD를 구매해 여덟번쯤 돌려보고 배경처럼 틀어놓았다. 최고가 아니어도, 서로가 있음으로 모든 것이 완벽해지는 순간을 지나는 청춘들.
이제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연배의 나는 젊은 감각이나 유행을 따라가려는 마음이 그다지 없고. 조언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그들과 어울릴 생각도 별반 없다. 내 불편함만큼 그들이 감내해야할 것들을 생각하면 더더욱이. 숨도 못 쉴만큼 바쁘기도 하고.
이따금 감각을 알고 있음을 뽐내려는 사람을 보면 약간 의아하기는 하지. 그래서 누구의 인정을 받고 싶은 건가요, 그들? 아니면 눈앞의 우리?
번호나 소셜미디어를 알려달라는 요청이나 타인에게 자신의 뭔가에 대한 문의를 들었음이 나에 대한 객관적 평가라 여겨지는 세태를 볼 때면 더더욱이.
이런 투덜거림을 생각하는 것조차 나이듦의 증거라 드물게 웃는다. 정말 흐리게 살고 싶다, 누구도 나를 모른채 그저 희미하게.




정제된 아름다움만이 가득한 세계가 좋기도, 슬프기도.
간신히 책을 두권쯤 읽었고 나흘간 출근에 너무나 업무가 싫어 책상 앞에서 두 시간쯤 딴짓을 했고 연휴기간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결국 자리를 고쳐앉아 거나한 답장을 써내려가다 이 모든 것들의 효용을 따지는 나 스스로에게 질려버리고.
내겐 작은 집도, 직장이 없어도 두 달쯤 버틸수 있는 돈도, 이제는 다른 이의 반짝거림을 봐도 갖고싶다거나 먹고싶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 연륜이 있으나. 그와 비슷하거나 어린 또래들은 노출된 순간 엄청난 박탈감을 받겠네, 생각에 더더욱 인증 문화를 곱씹어보게 된다. 이토록 정보의 시대에 완벽하지 않다 여기기에 더더욱 교류하지 못하고 문을 닫은 이들을, 무언가를 보장할 수 있는 부모도 그럴듯한 기반도 오로지 부족한 노력과 그럴싸한 미학만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우리는 그곳에 무엇이 있었다고 착각하게 될까요.
피아노도 독서도 달리기도 자전거도 타지 못하고 있는 나날. 매일 저녁 30분씩 쪽잠을 자고 새벽 두세시까지 일을 하고 다시 다음날 여덟시 출근을 하여 지리멸렬한 회의를 하고. 한달 째 이어진 출근 이후 처음으로 알람을 맞추고 자지 않았던 어느 공휴일, 자료를 요청하는 타 부서의 전화에 잠을 깨어 생각했다. 여기가 나와 이 직장의 선이구나.
관심없는 사람들을 만나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고 흥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맞춰주고. 그냥 듣기만 하라는 이야기에 묵묵한 표정을 짓다, 그를 위한 지출이 전 달 총 소비의 두 배를 넘어선 순간 생각했다. 지난 달에는 책을 한 번도 빌리지 못해서, 올해 도서관 우수회원이 되기는 힘들겠네. 그게 가장 싫었다.
나를 성장시키지도, 내 무릎을 꺾이게 만들지도 못하는. 그저 무의미한 시간들.
내가 아는 물에 잠기고싶은 마음만 간절한 나날. 건강히, 행복하실까요? 저는 조금이나마 상황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긴 연휴 평안히 보내세요, 저도 그럴테니까요.










누군가의 추천에 또 어이없을 만큼 빠져있는 중.
어떻게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십분이라도 본다. 그리고 장면장면을 복기하며 조용히 되내인다. 각자 다른 넷의 삶이 그렇듯 나 또한 안되면 말고, 내게는 그래도 선택지가 있다.
붉은 흙속에 손을 묻고 마치 무덤같다는 생각을 떠올렸지. 서늘한 습기와 두텁지만 기분나쁘지 않은 무게감 속에 하릴없이 손가락을 움찔거렸던 때. 거짓말처럼 나타나는 누군가를 상상하던 나를 근간 자주 떠올리는 것은 이제 내가 그 누군가가 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보다 높은 학위가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을 스칠 때마다 굳이 변명하고 싶은 마음을 하나하나 눌러 앉힌다. 대가를 장담할수 없는 긴 공부에 시간에 투자할만한 여유가 없었네요, 라고.










-요즘 너무나 빠져있는. 담담한 이야기에 묻은 한숨들이 견딜 수 없이 좋음.
나는 요리드라마나 요리책을 좋아하는 편으로, 창작자가 상상가능한 후각과 미각을 시각과 청각이라는 매체를 통해 보여주는 방식을 재미있어 하는데. 이는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라 요리책을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가 요리 과정을 좋아하냐는 질문으로 이어지면 곤란할 때가 있다. 맛있는 것, 예쁜 것, 아름다운 것, 정성과 마음이 들어간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기보다는 타인의 말끔한 결과물을 즐기고 싶은 게으르고 가벼운 성격이네요.

맞는 부분도 덜 맞는 부분도 있다고 느꼈으나 그 어림과 젊음에서 오는 에너지가 흥미로워서.
냉장고 아래로 떨어져버린 유니버셜 스튜디오 싱가폴의 마그넷과 책장 뒤로 넘어간 다우니 섬유유연제가 약간은 신경쓰이는 계절.
뭔가 적극적으로 자라는 것이 보고싶다는 내 말에 몬스테라 한 줄기를 꺾어보낸 남자의 국제소포는 당연히 세관에서 제지당했으며; 수순대로 폐기되었다. 가끔, 정말 가끔 머리 좋음과 일상적 수준의 상식 사이를 가늠해볼 때가 있고.
어쩌다보니 과학철학을, 특히나 칼 포퍼를 많이 들여다보고 있는 여름.


잘 되길, 생각한다. 빌어줄 말을 더 떠올리지 못해 그저 잘 되길.
손목시계 아래 선득한 땀이 고이는 계절.
문득, 오랜 기억이 지층 아래에서 떠올라 불현듯 다가올 때가 있다. 아버지의 시신을 본 내가 죽음으로 그를 기억하고, 조부의 마지막을 보지못한 내가 영원한 삶으로 그를 떠올리듯. 언젠가 내가 조부에게 물었다. 내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조부는 내가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하지만 누구도 내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듯한- 지난 과거를 떠올릴때면 짓곤 하는 특유의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고, 역시나 그답게 직답을 피했다. 서너일 후, 내 잠자리를 정리해주던 조부가 평온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예쁜 사람이었다, 라고. 아무런 부연도 없는 단정적 어조에 나도 다른 것을 묻지 않았고, 한동안은 거리를 지나는 내 눈에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곤 했다. -예쁜 사람, 예쁜 사람.
내 미감은 조부와 책과 교육과 남자와 또래들에 의해 만들어져, 어떤 것들은 아주 유치하고 말도 안되게 장난스러우면서도 다른 어떤 것들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그 콧대가 높아서. 이따금 나는 다른 이들의 미학을 험담하는 이들에 대한 이해가 힘들다. 누구에게나 같은 환경과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손 닿는 것을 택하는 이들을 폄하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지.
나는 아직도 세계는 커녕 자신의 마을 바깥으로 발조차 내밀지 못하는 이들을 너무도 안다.
언제나 세계는 멋대로 참혹하고 멋대로 매혹적이라, 우리는 이토록의 공포과 경외를 안고 삶을 살아가는 것일지도.
우린 창조력도, 혁명도 없다. 그러나 장난은 친다. 장난이 일상의 혁명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변절은 계절같은 것이다. 생물학적 아버지는 없다. 왜냐면 법이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는 류이치 사카모토다.

버티는 것도 지겨워 무작정 자리를 떠 평일 저녁 전시를 보러갔다 종료 며칠 전+무료 입장이라는 사실에 전시보다 사람이 더 많은 공간을 경험했고. 연착된 지하철로 순환 없이 매캐하리만큼 더운 승강장에서 싸움을 벌이는 이들을 구경하려 더 몰리는 양상을 보며 사람들은 타인의 재난에 관심이 많구나, 생각했다.
오래 전 맞춰두고 안 입는 한복을 나눔하겠다는 분이 있어 생각없이 신청했다 화사한 두루마기에 속치마까지 넘치는 한 상자를 받아 가을의 한복과 고궁 나들이를 떠올렸고. 겨울용 정장 블라우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던 중 또 나눔이 있어 보낸 메세지에 여름 옷에 푸딩, 간식, 음료수까지 또 잔뜩 챙겨받은 종이봉투를 들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커피 한잔을 사드리고 따릉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든 정말, 사람으로 살고, 사람으로 죽는다.

그 사이 장물전;도 관람했고. 굳이 움직이기 애매한 거리와 홍보 부족 탓이라 생각했지만 사람이 너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만큼 흥미로운 전시라 여겼기에.
좋다고 생각한 것은 죄다 컬렉션의 일부였기에 어쩌면 이렇게, 하는 한숨을.
가지지 못한 욕망이 폭발하던 시기는 이제 내게도 사그라들어, 가능하면 있는 것을 적당히 고치고 꿰매고 맞춰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그 과정이 새것을 사는 것보다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요구하면 좀 곤란해지고.
최근 산 것 중 가장 잘 쓰고 있는 것은 코코넛 오일. 여름이라 녹일 필요도 없어 머리카락이며 온 몸에 바르고 있는.
굳이라면 차라리 조금 더 걷고 심야버스를 타기에. 택시를 탄지 얼마나 되었나, 이따금은.
이 모든 절약은 미친듯 틀고 있는 에어컨과의 등가교환으로;_;
운동을 한 과거가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그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데 -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회자되는 내 전학교는 정말 부담스럽기 짝이 없고 - . 군살이 늘고 있지만 어쨌든 잘 소화하고 적당히 자고 곳곳에 자리한 근육 덕분으로 아직도 몇킬로 쯤은 너끈히 뛸수 있는걸 생각하면 어쩌면 십 대에는 운동을 하는 것이 긴 생에 가장 효과적인 투자가 아닌가 더듬어 보는 때가 있다.



-아름다운 걸 보면 영원히 웃고, 슬픈 것을 보면 오래 울고 싶다. 내가 무뎌지는 것이 가장 두려워지는 연배.
어느 나라를 처음으로 다녀왔고. 긴 출장에 모두가 간다는 관광지가 아닌 연구소와 기관, 정부 부처를 옮겨다니는 일정에 한국과 무엇이 다른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다만 현지 코디네이터가 이야기해준, 초원 위로 쏟아져내리는 별빛을 당신이 겪을 기회가 있길 바란다는 그 애틋한 문장을 가만히 새겼고.
개성없이 무난한 인상으로 어디를 가든 그 나라 사람처럼 생겼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기에. 역시나 이 나라 북쪽 사람처럼 보인다는 이야기가 칭찬 고맙다, 는 내 대꾸에 돌아오는 웃음들이 좋았다. 향취가 독하다는 고기며 만두도 나는 거리낌없이 먹고 잘 소화했고.
누구도 원하지 않기에 내게까지 온 자리를 오래 거절했다. 결국 퇴사를 거론하는 내 언어에 사람들 사이에는 일종의 급이 있으며 우리와 같은 급들은 맞는 미래를 잘 가꾸어야한다, 힘찬 대답에 그만 질리고 말았다. 졸업한 학교들의 몇몇 면을 제외하면 저는 주보호자가 없는 고등학교 중퇴자로 어쩌다 노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져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그 모든 과거를 한 단어로 급, 이라 표현할수 있을까요. 어떻게든 맞춰보자는 이야기에 그 자리에 앉을 다짐을 하긴 했지만 내 실망도 낮아진 기대치도 여전하고.
언젠가 이야기했었지. 나를 사랑하기로 운명지어진 마음을 감당할수 없어, 내 인생에는 아이가 없을 것이라고. 한편으로 지금 누군가 나타나더라도 적절히 거리를 유지할수 있는 고요를 키우는데 걸린 시간을 생각해보면.
덥고, 지치는 일들 뿐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그마한 재미라도 얻으실수 있길 바라며. 모쪼록 건필, 여름감기, 이사 모두 무탈히 잘 해결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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