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

누가 바람을 보았나요?
나도 당신도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나뭇잎들이 흔들릴 때, 바람은 그곳을 지나가고 있지요

떨이과일이 아닌 과일을 살수 있고, 마음에 드는 중고책을 거리낌없이 고르며, 얼리버드로 뜬 관람권 따위를 죄책감없이 결제하고.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소비세태에 아연함을 느끼다 망연히 생각한다. 이제는 그 누구도 가난을 이야기하지도, 그를 지켜보려하지 않네, 하고.

남루함 그 자체보다 그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특함으로 치하하는 세상. 모두가 살균되고 표백된 우위에 있으려 하는 오만.

나의 옛 가난보다 지금의 비루가 더 어렵고 모질다고 생각되는 즈음.

가리모쿠와 니체어를 오래 좋아했고, 예산도 공간도 없다는 결론을 느리게 내린 나는 당근으로 나눔받은 낡은 양산형 안락의자에 만족하고.

자신의 취향을 타협하지 않았던 지인이 레트로 열풍의 곁바람에 오랜 취미들을 높은 가격으로 거래했다는 소식에 웃는 얼굴을 보내며 생각한다. 내 타협이 돈이 되는 일은 전에도 후에도 없겠구나, 하고.

요즘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453.

-그러나, 그럼에도.

452.

우리가 서로를 마음에 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리틀 포레스트, 라는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조명한 한국과 일본 양국의 두 영화에서 - 차후 제작된 한국의 유리함을 차치하고 - . 일본은 새로운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 성장이자 닫힌 결말로 제시되고, 한국은 자신을 두고 입히고 먹힌 고향을 두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성장이자 열린 결말로 제시된다. 언제든 돌아올수 있다는 암시와 함께.

나는 언제나 이 두 영화가 잔혹한 자연을 낭만적으로 포장하는 달콤한 동화임과 동시에, 두 국가가 도달한 어느 지점을 건조히 보여주는 시대적 장치라 여겼다.

나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가끔 웃고, 자꾸만 말하고, 잘 흘리고, 섣불리 결정내린다.

이 집에 들어온 시간도 한 손바닥을 넘어서게 되었는데, 여전히 내부창과 새시를 두껍게 이중으로 만든 것에 지독히도 만족한다. 창밖의 푸르름과 선명한 햇살, 내리는 빗줄기가 그저 어스름함에도, 냉기와 열기를 가문 어둑한 집안에서 그나마의 시간을 영위할수 있음에.

언젠가 이곳에서 마지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