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본 영화 중 가장 흥미로운 블록버스터였기에 시간이 나면 길게 써볼 생각도 있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명명백백한 악에 어떠한 변명도 핑계도 주지 않았다는 것. 나는 이제 모호한 선과 악의 관점을 - 결국 어느 쪽이 승리하든 - 다루는 양양이 뻔한 안타고니스트보다 높게 평가되는 풍토에 좀 질려버려서.
한국의 몇몇 신작 소설과 오버 더 초이스를 읽었고, 2014년의 참사에서 영향을 받지 않은 글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에 - 작가 각각의 특징이 심하게 투영된 것은 차치하고 - 과연 우리에게 무슨, 어떤 자격이 남았나를 자문했던.
짧지만 독립 법인을 지닌 국가기관에 몸 담았던 시기와 시립 공공기관에 있는 현재와의 행정적 차이를 느끼고 있는 중이기도.
나를 소모하는 것들에 많은 마음을 쓰지 않으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행하려 노력하는 즈음.
휴대폰 후면 카메라의 포커스 조절이 안되고 있는데, 고치는 금액이 새로 사는 금액과 거의 비슷하여 그냥저냥 버티고 있다. 급한 경우에는 어색한 각도로 전면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가볍게 찍어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을 머릿속에 더 상세하게 기록하기 위해 오래 보는 일이 늘어나기도 했고. 모두가 휴대폰-카메라가 없었던 시절에는 이렇게 바라보는 일이 불편하고 애틋했었지, 라고 잠깐.
그래도 일단은 한다와, 그에 맞물린 새로운 것들의 등장에 나는 언제나 손을 들어주는 편이었지만 어쩌면 누군가 의도한 지금까지 너는 불편했던 거야, 그렇지? 의 암시에 지나치게 잘 걸려드는 편인 것 같다는 생각 또한.
내 몸이 점점 줄어든다. 내 몸의 원자들이 더 가까워져서 밀도가 높아진다는 뜻이 아니라, 나 - 자신의 원자들이 소우주와 합쳐지면서 융합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무척 뜨거운 열기와 견디지 못할 빛이 있을 것이고 - 지옥 안의 지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나는 빛이 아니라, 꽃만 바라볼 뿐이고, 스스로 불어나거나, 나누어지지 않으며, 여러 가지의 것에서 하나로 되돌아간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빛나는 꽃이 눈 깜짝할 사이에 금으로 만들어진 원반으로 변해서 줄 위에서 회전하며, 그런 뒤에 소용돌이치는 무지개들로 변하더니, 마침내 나는 동굴에 다시 돌아와 있고 동굴에서는 모든 것이 고요하고 어두우며 나는 나를 그 안에 받아들일 곳을... 나를 끌어안을 곳을... 나를 흡수할 곳을... 찾아 젖은 미로를 헤엄친다.
그렇게 내가 생겨났으리라.
-이 한 문장 한 문장과 살갗과 머리카락과 이마와 콧등을 적시는 땀을 느끼며 석계역을 걸어올라가던 그 밤을 나는 오래 기억하겠지.
나는 빛이 아니라 꽃만 바라볼 뿐이고.
세상에 일어나는 나쁜 일의 대부분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이겠다, 라고. 나는 이런 말들을 발견하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읽고 있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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