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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무언가를 길게 쓰다 모든 문단을 지우고 경쾌한 영화라는 한 마디를 남겨둡니다. 근간 많은 영화들이 영화 외적인 정보를 미리, 혹은 추후에 받아들이기 요구하며 관객들에게 지나친 피로감을 선사하는 경우가 - 그를 해석의 여지라고 말하는 게으른 감독과 제작사들이 - 많아 큰 기대를 갖지 않은 영화 중 하나였는데. 영리한 감독이 선사하는 정교한 영화를 볼 수 있어 정말 기뻤습니다. 자신의 영화를 응시하는 관객들을 치켜세우거나 무시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끌어감에 흔들림이 없는. 


차기작을 흠씬 기대해봅니다. 


정말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배우이지만 배우 자체가 지닌 이미지 + 계산된 영리함을 연기하기에 상복이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John Cho에게도 찬사를. 감독과 제작자의 입장으로 당신에게 거는 기대는 언제나 무거울 것이고, 당신이 알고 있는 만큼 그 노력의 결과를 돌려주지 못해 누군가는 늘 미안할 것 같습니다, 라는 섣부른 궁예를 남기며.  

 

일은 힘들고 책은 재미있고 영화는 즐겁고 뉴스는 무거워 열흘동안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던. 이렇게 사람은 도태 혹은 익숙해지는 구나, 하고. 


투정을 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자평하는 나일지라도 그다지 별로, 라고 말하는 음식이 딱 하나 있는데. 여러가지 토핑을 위시한 각종 매운 떡볶이. 최근 조금 더 안 좋아짐.


마음에 마음을 더해 더욱 더 좋아지거나 그에 감정이 덜해져 약간 덜 싫어하거나 하는 양은 늘 놀랍지. 감정에 형태는 없지만 중량은 있어, 더 무거워지거나 조금 더 가벼워지거나 시간과 기억에 따라 그 무게가 가감되고. 마음과 행동과 태도는 그를 따라 이리저리 기울어지고. 


최근 나를 민감하게 만들었던 용어는 팬픽션의 가성비. AU를 주로 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여길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팬픽션이 추구하는 것은 케릭터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한 세계관의 확장 혹은 접근의 용이성 아니었나요. 내가 그리고 꿈꾸고 익숙한 세계로 타인이 만든,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케릭터를 끌어들이고자 하는. 내가 아는 팬픽션이란 스스로의 만족감이 최우선이라 타인의 가독성을 가장 우위에 두고 그 거대한 전체를 폄하하려는 용어에 대한 이해가 힘듦. 스스로가 몸 담은 부류를 그렇게 깎아내릴 이유가 있을까요.


-요즘 내 마음에 너무나 가득 차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