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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제나 반걸음 정도의 정적이 있는 배우들에게 무소위로 끌리는 편이지만. 절대 뒤돌아보지 않을 듯, 단단하고 야멸차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배우에겐 늘 할 말 대신 무릎을 꿇고.


매일 새로운 흉터를 얻고. 여전히 그 흠을 지닌채 솟아나는 새 살들에 나는 언제나 반짝이는 상처할퀴고 베이고 긁히고, 매양 피 흘리는 마음을 유지하면서.  


약을 뱉고, 주사바늘을 빼고, 사방으로 자신의 피나 오물을 던지고, 당신들이 뭘 아느냐고 소리를 치고, 그럼에도 내 아랫배에 얼굴을 묻고 야곱을 기도해주는 이들을 어떻게 미워하지 않고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이 즐거움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은 채 나는 가만가만히 그 대화를 복기만 했다.


그 이름의 커피를 주문했고, 모님의 마음 속에서는 시즌2로 마무리된 그 드라마의 사운드를 자주 들었고, 어느 지역의 부동산값을 검색해보았고, 클리닝하여 넣어두었던 코트를 꺼내 걸어놓았으며.


다정하게 엉키던 오정어와 먹물 리조또의 감촉와 무거움을 자주 떠올렸고, 그 베이커리의 슈톨렌을 예약했다. 


왜 나만, 이라는 마음의 억울함을 벗어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이제는 마음의 솜털을 움직여주는 그저 그 존재만으로. 


그럼에도 언제나 정면을 직시하는. 우리 안의 모든 소녀, 그리고 여자.


기대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이야기의 흥미로움과 그 존재만으로 당위를 만들어내는 굉장한 배우들이 있습니다. 


배경음악도 정말 뭐라 덧붙일 말이 드물 정도로 마음에 들어, 올해의 스코어를 드립니다.


-운 좋게 기회가 되어.


저는 요즘 비효율적인 폭력행위 혹은 힘?physical force or power으로 인물을 묘사하는 모든 고인 물들에 짜증을 내고 있는 터라. 여전히 굉장한 배우들이 굉장한 연기를 - 특히 Davis와 Erivo가 - 보여주지만 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연출은 지루한 폭력과 성애의 이야기만을 되풀이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30분을 위해 앞부분의 90분을 버틸 이유는 있었습니다. 그들과 우리를 위해 열린, 이 좁은 해피 엔딩.


뒤늦게나마 시간을 잡아.


이런 영화였군요. 제 생각보다 덜컹거리고 제 생각보다 훨씬 묘사의 농도가 짙으며 제 생각보다 더 어두운 영화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극을 이끈 배우들과, 제작과, 연출과, 스텝들과, 이 영화를 불러낸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가감의 무언가를 덧붙이지 않아도 그저 이정표가 되는 영화들이 있지요. 이런 과거가, 전례가, 상황이 있었으므로 멀지 않은 미래의 가까운 견인차가 되는. 


요 며칠 배우, 특히 여성 배우만으로 오로지 풍족한 영상 매체에 너무나 익숙해져 아침 뉴스에 남성 앵커만 홀로 등장하는 것을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