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자신의 것을 아는 사람들의 단단한 분위기는 정말이지 취할 듯 좋지요.


최초의 기억은 누군가의 어깨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그 사람 특유의 걸음으로 인해 지면이 일렁거려 겁에 질린 나는 제대로 앞을 볼 수 없던, 까슬하게 돋아 내 허벅지를 스치는 검은 귀밑머리만을 오래오래 내려다 보았던. 그리고 다음 장면은 어딘가에 앉아 머스타드와 케첩이 잔뜩 뿌려진 핫도그를 먹는 나이다. 핫도그는 달고 시큼하고 질기며 적당히 찰기가 도는, 익숙하지 않은 이국의 맛이다. 아버지는 맛있냐는 물음을 건네고 망설이던 나는 아버지에게 내 잇자국이 남은 핫도그를 내민다. 입술 끝으로 웃던 아버지는 핫도그를 한 입 베어문다. 그리고 그 말랑하고 흰 빵에도, 들떠있던 보라색 입술에도 흠씬 피가 묻어나며- 아버지는 벌컥 검은 피를 토한다. 다시 장면은 전환되고, 나는 친척의 차에 탄채 처음 신어본 분홍 운동화에 조금 들떠 발뒤꿈치를 연신 짓이겨대고, 마주한 피부를 자꾸만 베어내는 까끌하고 누런 옷을 입은 조부는 소리 내어 울고 있다.


어쩌면 현실이었을, 그리고 이후 많은 경험과 문화와 이럴 것이다, 라는 추측이 덧입혀진 이 사적인 기억. 나를 어깨에 태워준 이가 아버지가 아닌 당시 축제를 연 부대의 어느 미군이었음, 내가 먹었던 음식은 핫도그가 아닌 솜사탕과 찹스테이크였음을, 아버지는 그 때 토혈하지 않았으며 조부는 삼베옷을 입은 적이 없다, 라는. 내내 간직하고 있던 내 강렬과 충격이 현실과 사실 이후 내 상상과 멋대로의 연계가 덧붙여진 감정적 창작 - 스스로가 납득 가능한 - 임을 알게 된 순간의 맥빠진 공포라던가. 


다른 이야기로 나는 화장을 하면 할수록 흑백사진 속 어린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가는 편인데 - 모종의 일로 메이크업을 받고 조명 아래 섰을 때가 실로 - 아마도 이목구비가 뚜렷해질수록 그에 비슷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은 한편으로 아버지가 별반 눈에 띄지 않는 수수한 얼굴임을 고려하면 남성과 여성의 골격적 차이는 사실 아주 미미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때가 있다. 그만큼 이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남성과 다름, 즉 극단적 꾸밈에 대한 요구가 이렇게나 크구나, 하고. 


내가 선택할 수 없던 것으로 사랑을 받거나 미움을 받은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내 얼굴을 좋다 잘라 이야기하기 힘들었기에 매번 뻔한 기술이지만 화장 자체를 싫어한 적은 - 귀찮아한 적은 많아도 - 없었던 듯. 내게 화장이란 좋아할 수 없는 내 얼굴을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위장이자 방편이었음에. 


내 마음에는 늘 꽃이 피거나 송이가 매달린 정원이 있고, 내 각오 혹은 누군가의 감정에 따라 그 정원에는 해가 돋았다, 혹은 비가 내렸다, 흐려 질척해졌다 날씨는 자주 엇갈리고. 허락없는 누군가가 흙발로 그 정원을 헤치고 들어와 꽃들을 툭툭 짓밟을 때면 무릎이 꺾이는 절망에 휩싸이다, 내가 주고 싶은 이들에게 잘 자란 꽃을 선물할 때면 다시금 말간 새순이 돋기도 하여. 다만 그 정원이 아주 마르지 않기를 소원하는 나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