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굳이 나의 것일 필요없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포만감에 잠기게 하는 이 아름다움이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나를 구원했는지.


"You said move on, where do I go?"


개와 함께 살았다. 내가 태어났을 무렵 이미 중년을 넘긴 늙은 개였다. 눈꼽 낀 눈망울은 속눈썹까지 녹아들어가 매양 애처롭거나 멍청해보였다. 나는 그 개를 아꼈던가? 알 수 없다. 어떻게 하나의 생에 내 감정의 호오를 들이댈 수 있단 말인가. 좋아했던 점도 싫어했던 점도 잔뜩이었다. 그러나 그 물러진 뱃살에 귀를 묻고 살 비린내를 맡으며 빠르게 뛰는 심음을 듣는 것은 좋았다. 가만히 얼굴을 기대고 있을 때면 개는 내 뺨을 핥았고 나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오는 털을 골랐다. 눈칫밥을 먹는 집개들이 그렇듯 순한 개였다. 짖는 일도 무는 일도 드물었다. 축축한 콧망울을 어루만지던 내가 손톱을 세웠을 때도 깨갱, 하는 신음과 달리 미동도 하지 않는 개였다. 그 해 겨울, 나는 일주일 동안 학교를 가지 않았다. 비워지지 않는 밥그릇을 매 끼니마다 바꿔가며 나는 개와 함께 있었다. 매일 아침 조부는 내 얼굴과 모로 누운 개를 번갈아 바라보다 자리를 비웠다. 헐떡이는 호흡이 느려지고, 늘어진 근육이 뻣뻣해지고, 늘 젖어 선명했던 눈동자 위로 흰 막이 드리워질 때까지 나는 쭈그려 앉아 개의 곁을 지켰다. 그 개가 죽음을 맞는 것을 기다렸다. 생을 책임진다는 것은 죽음을 견뎌야 하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그 개는 이름조차 없었다. 그냥 개였다. 내 개였다. 그리고 죽은 개가 되었다.


누군가에 대한 감정을, 소유를, 애정을 생각할 때면 이따금 나는 내 죽은 개를 떠올린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던, 그 고통을 공유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나와는 다른 객체, 그저 다른 생물, 전혀 별개의, 그러나 내 것이라 주장하고 싶은 그 죽은 개. 사람에 대한 욕심이 들 때마다 내 마음에 제동을 거는 것 또한 이러한 기억이다. 내가, 네게. 단지 존재하는 이 마음을 제외하고 단 한 번이라도 득된 적 있었던가.


너로 인해 만들어진 모든 내 감정을 부인하지 않는 것. 그 선명한 아픔, 이 세상 것 같지 않은 고통만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것만이 내 마음의 증거였다. 누군가에게 바치는 내 마음에 내가 늘 미안해하는 이유다.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문득 생각난 좋아하는 내 글. 내 속에서 흘러나온 모든 글과 말과 문장과 생각과 마음임에도 애정의 경중이 매겨진다니, 우습게도.


이 글을 쓸 무렵, 병원 연수를 위해 잠시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중이었던 어느 이국의 의대생은 내 취업 기원을 위해 자신과 내 침대를 건너다니며 열렬한 태도로 자신이 알고 있는 전통춤을 알려주었다. 나는 어쩐지 좀 취한 듯한 기분으로 이 문장과 문장 사이 그 춤을 따라하며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을 했. 결국 나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그 연수생은 좋은 평가로 연수를 마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고, 지금도 간간히 서로에게 연락을 하는 중임을 돌이켜보면 내가 좋아한다, 고 생각하는 것은 이 글 자체가 아닌 그때 우리가 함께 했던 그 들뜨고 어수선하며 맥락없이 긍정적이었던 그 공기가 아니었을까, 하고. 


고작 몇줄의 창작이 이러할진데, 모든 거대한 산물들은 또 얼마나 많은 작가와 독자와 관객과 평론가의 배경과 함의를 품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