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영화를 더듬을 수록 자신의 육체가 외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 가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오로지 그가 간직한 내구성과 강도와 움직일 수 있는 가의 여부에 집중하던 Grace의 모습이 떠올라 미칠 것 같아집니다.
자신의 상처보다 사령관의 생사를 먼저 묻던, 내가 지원하겠다고 말하던 피투성이 입술과 가슴 속 동력원을 지칭하며 이를 위해 자신이 과거로 온 것이라 단언하던 그 아무렇지 않은 얼굴. Grace의 믿음이 부모조차 구해주지 않은 어느 먼 곳의 신보다 자신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었던 미래의 Dani를 향했듯, 자신이 아무리 변화할지라도 과거의 Dani가 당연히 자신을 믿고 따를 것이라 의심없는- 행동과 자세와 태도와 표정과 그 거리낌없는 육체를 떠올릴 때면 매번 녹아내릴 듯 저는 혼곤해집니다.
희한하리만치 이 모든 시리즈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음에도 - 3편과 4편을 그리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은 입장에서 - 이 영화가 이토록 특별한 전율을 주었던 이유는 이에 기합니다. 미래의 Grace가 단 한번도 과거의 Dani와 자신의 연대를 의심하지 않은 것. 어쩌면 사랑과도 같은, 어쩌면 사랑보다 깊은. 이러한 기억과 상흔을 나눠지며 서로가 지닌 과거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변화를 결심하는 것. 그리고 우리는 지난 시리즈를 통해 완성된 멋진 멘토까지 겸비하고 있지요.
七月与安生을 통해 이야기했듯 언제나 제가 매몰되는 지점은 이러한 여성들의 연대입니다. 나는 흔들리고 또 흔들려 쓰러지고 무너지고 무릎을 꿇고 절대 일어설 수 없을 지언정, 나를 향한 상대의 마음에 한치의 의심도 품지 않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생각하고, 손을 들고, 발언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결심이란 이런 것들 뿐이네요.
겨울 길목에 들어서며 어쩐지 잠이 쏟아져, 매일매일 습관처럼 예매하고 아직도 보지 못하고 있는 영화. 내일은 꼭 봐야지, 하고 잠들기 전 나는 새로운 희망을 품은 채 다시 예매 창을 열고.
원래도 매운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투병을 거친 뒤 고춧가루에 정말 약해져서. 김치는 물론이고 신라면의 김냄새만 맡아도 연신 재채기를 하는 등 어쩐지 한국에서는 좀 힘든 입맛을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에요. 백김치부터 조금씩 시작합시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것도 잠시, 어묵탕조차 맵다고 생각하는 스스로에게 질려 두부와 계란으로만 끼니를 지나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과, 재미있는 곳에서 먹고 싶어하는 사소하고 거대한 바람.
-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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