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칫솔꽂이가 바삭, 감자칩처럼 깨져버린 날. 그리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던, 언제 사서 그 자리에 두었는지도 모를. 천년 만년 그 자리에 있어줄 것 같았던 존재가 부서짐으로 자신의 의미를 주장하기 시작하면 어처구니 없을 만큼 당황하게 된다. 무턱대고 새것을 사기에도,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두기에도 불편하기 그지 없는. 정말 사소하고 당연한 존재에게 느껴지는 이 배신감. 내 멋대로의 기대에 네가 맞춰줄 일말의 이유도 없었는데도.


너는 내게 이러면 안돼.


-사람도 사람에게.


모님이 이제 닥중위닥 이야기는 더 안 쓸 거냐고 물어주셔서. 미국의 모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로 레드넥 공화당원 이야기는 더이상 못 쓰겠어요ㄱ- 하자 무척이나 웃어주시는 통에. 저는 진심이었는데 말입니다.


세계적인 추세로 인해 내가 몸 담았던 곳들도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에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방역을 훌륭히 해낸 모국의 영향으로 그나마 다른 국가들을 방문할 수는 있게 된 국적, 의료인의 경력, 받는 돈에 별 관심이 없던; 과거로 인해 내 몸값이 엄청나게 뛴 것을 보고 웃다, 슬퍼졌다. 그래요, 어떤 의미로든 코로나 이전의 세계는 이제 돌아오지 않겠지요.  


방호복이 남긴 목덜미의 상흔과 귀 뒤의 압통, 아직 정리되지 않은 돈과 여전히 유효한 수많은 제약 속에서도 나는 내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의 끔찍하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