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서너번은 타 언어로 된 답장을 보내고, 몸 담은 곳 또한 반절 정도는 영어를 사용해야하는 업무를 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모두가 낯선 언어로 둘러싸여 있는 환경은 아닌터라 영어는 물론 일본어도 상당히 잊고 있다. 어제는 무심코 키보드를 두드리려다 *, 에 해당하는 영어 표기를 잊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주관적인 묘사라면야 기억하고 있는 단어와 문장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일 대 일로 대응되는 명사를 잊어버리다니. 실질적인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오로지 나만이 이 단어의 망각과 스스로의 자괴 속에 우울해했다.
이렇게 언어는 죽는다. 지속적으로, 내 안에서.
재미있게도 남자와의 관계가 이토록 온전했던 적이 없다. 닿을 수 없는 서로의 물리적 한계를 인지하고,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하며, 서로의 하루를 듣고 피로와 힘겨움을 위로해주며 내일의 힘이 되어주려 노력하는. 중첩되는 시간과 공간이 없기에 용납가능한 이 절대적 거리의 적합성integrity.
이따금, 혹은 종종. 내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 조부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조부를, 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아버지를 정말이지 그대로 빼닮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모두 이 세상에 없고, 어디선가 나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웃으며 흔한 얼굴이라, 는 답변을 덧붙이곤 한다. 자신의 세계에 너무나 몰두한 이들이 그렇듯 조부와 아버지 모두 어느 정도 신경질적이고 성마른, 그러나 섬세한 책벌레의 면모를 지닌 얼굴선과 굳건한 턱, 작고 가는 코를 지니고 있었고 그에 더해 선명한 광대뼈와 끝이 올라간 눈매를 지닌 나는 동양 어디를 가도 조용히 묻힐 수 있는 - 특별히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이지 않은 - 전형적인 얼굴을 가지게 되었다. 그 전형성이 내게 도움이 되든, 혹은 불편이 되든. 나는 내게 아무런 족적도 남기지 못한 내 아버지가 드리운 단 한 가지가 나의 첫 인상으로 대변된다는 것에 괴리감을 느끼곤 했다. 이는 내가 내 얼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의 큰 부분을 담당한다.
무척이나 따랐던 양육자와 생각해본 적 없는 이의 얼굴을 매일 거울에서 마주쳐야하는 피곤함.
유전자는 강력하고 아이들은 언제나 혈연을 닮지. 부모의 위대함은 배우자와 나, 혹은 내 부모와, 혹은 어딘가 멀리 있는 선조의 얼굴을 닮은 자식들을 길러내는 담대함에도 깃든다. 어쩌면 애정 뿐만이 아닌 감정을 담은 아이들의 외양을 감내하고 그들을 저마다의 시간과 연륜을 품은 성인으로 자라나게 하는 것. 그리도 또 그들의 아이들이.
-문득, 한 때 함께 했던 동료 중 본국에서 온 이들을 제외하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때가 있다.
한역본으로도 무척이나 좋다고 생각했던. 조심스럽게 읽고 있다. 언젠가 모님이 이야기했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화자의 이중성을 상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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