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다, 라는 느낌을 받은 영화를 정말 오랜만에 목도한.
Ferguson의 골격과 늘 청유하는 듯한 말투, Duncan-Brewster의 굳센 입매와 올곧은 억양이 정말 좋았고, 자신의 신이 현현하는 순간을 목도하고도 평정을 잃지 않는 닥터 카인즈와 점점 더 창백해지고 날을 세워가는 레이디 제시카에 넋을 잃곤 했다. 그리고 아는 분은 아시다시피 My boy가 My Lord Duke로 바뀌는 순간 전율했고.
극복할 수 없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거대한 신앙으로 바꾸어 신성시하는 양상을 정말 좋아하지 않지만- 실로 굉장한 덕의 영화다, 라고 느낀 지점 중 몇개가 흥미로워서. 모래바람이 휘날리는 그 어머어마한 환경에서 느낌과 구분을 위해 인물들에게 썬바이저를 주지 않은 것, 모든 시퀀스 내내 영상을 압도하던 음악이 차니와 폴이 처음 만나는 순간의 의미없는 대화와 함께 소거되는 것, 모든 계시의 목소리가 나이든 여성의 목소리로 전달되는 것. 언제까지고 강하고 명민하고 아름답고 이해할 수 없는, 절대 믿을 수 없는 어머니와 그 자매들에 대한 기이한 묘사들.
특히나 압도적이었던 것은 오니솝터의 날개와 풍기체의 Ballooning을 표현하는 방식, 모래벌레가 지날 때마다 파도처럼 몰아치는 사구 등 모래를 지닌 지상 위 대기의 표현. 대기가 없는 우주에서는 아무런 부가장치 없이, 정지조차 존재하지 않을 만큼 매끄럽게 움직이던 유선형의 물체들과 대비되는 확고한 질감, 그 움직임.
대표적이라 일컬어지는 전작들이 그랬듯 Chalamet의 외모에 취한 감독들이 그 연기를 조절하지 못하거나 기괴한 시퀀스와 몽타주 - Caladan을 거니는 폴의 모습, Reverend Mother과 통증으로 독대하는 장면의 감정 표현이 특히 좋지 않음 - 로 설명을 낭비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정우성의 비트나 마동석의 근작들을 떠올리곤 한다. 젊은 여성은 오로지 젊은 여성이라는 육체를 지닌 피사체로 이용하는 것 밖에 모르는 남자들이 - Blade Runner 2049에서 Ana Celia de Armas Caso의 쓰임을 돌이켜보면 - 이렇듯 젊고 어린, 싱싱한 외모에 취해 오만방자한 샷들을 경애 어린 수준으로 바치는 양상을.
-모으려고 하지 않았으나 모이게 된. 이 중 실물로 가진 것은 일본에서의 첫 보너스로 샀던 Tiffany 1837™ Silver Ring 정도가 전부인데다 귀금속에 대한 내 지식은 여전히 일천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모으듯 아름다움을 기록한 책을 모으는 기쁨도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의 귀에 속삭이고 싶은 때가 있다. 제일 위 쇼핑백은 얼마 전 잠깐 전시를 했다던 Clash de Cartier의 전시를 다녀온 모님이 주신 그립톡.
집을 다시 채울 때 굳이 흰색을 많이 쓰고 싶지 않아 최대한 배제했고, 한 달에 한 번쯤 바닥을 닦고 일주일에 한 번 화장실을 청소하며 그다지 불을 쓰지 않지만 어쨌든 요리 직후 레인지를 닦고는 있는 등 때가 타지 않는 색이 많아 예전보다 청소가 한결 쉬워진 것에 자부심이 있다.
올해의 책은 제 4 신분 중세 여성의 역사. 표지의 한민함에 속지 말자.
나 또한 대화의 과정을 기억함으로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터라 첫 대화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다음 대화와 상황, 당시의 분위기와 느낌이 연잇곤 한다. 전에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의 서두를 밟는 것도 좋아하고. 개인적인 일로 이리 저리 서핑을 하다 무척 좋아하는 분의 인터뷰 하나를 읽게 됐고, 십년 전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가 그리던 미래를 그대로 밟고 있는 분의 현재에 나 또한 오늘을 일어설 힘을 얻는다. 우리가 이야기했던 막연한 꿈의 세계에서 누군가는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오열하던 愛すべき娘たち의 토모에처럼.
자녀가 중학교에 이른 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요즘은 내신을 위한 의도적 자퇴도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미리 계획을 세워놓지 않으면 인서울조차 힘들다는 이야기에 좀 놀랐다. 한때 검정고시생은 교대 수시 모집에 응시할수 없었고 서울대는 자퇴하기 전까지의 성적을 모두 입시에 반영했지만,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면 내신과 상관없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요즘 아이들의 성장과 성향이 그렇듯 교육과 입시에도 내가 모르는 수많은 변화가 있겠지, 내가 더 지치는 기분이 들어 조금 무거워졌다. 오늘 하루의 시작이 가장 힘들던 때를 그 아이들도 지나고 있겠구나, 하고.
추위든 더위든 손톱이든 머리칼이든, 기를 수 있는 건 모두 길러두라고 말한 건 사막의 누군가였지.
매일매일 되뇌었다. 웃어주지 말자, 친절하지말자, 좋아하지 말자. 단단해지지도 않는 연한 마음이 물러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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