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날카롭게 목덜미를 파고드는 겨울과는 달리 봄은 이렇듯 말랑히 오겠지요. 조용히, 그러나 어느 순간 내 손등을 감싸고 있는 부드러움처럼. 

 

매일매일 조금 더 관대해지길.

 

눈뜨면 출근하고 눈뜨면 출근하고 눈뜨면 출근하고. 지난 열흘 동안의 모든 지출내역이 0이라는 사실이 나를 웃게 한다.

 

두려움으로 사랑했고 그 두려움으로 더 사랑하지 못했던.

육상이라고들 많이 이야기하지만 지금도 멍하니 있을 때면 건반을 두드리는 상상을 하는 것처럼, 평생 피아노는 내것이겠지.


-내가 아는 모든 언어는 신의 역사인데.

 

 명미 킴은 백인 시인의 말투를 닮을 필요도 없고 백인 청중이 알아듣기 쉽도록 내 체험을 "통역할" 필요도 없다고 내게 말해준 최초의 시인이었다. 그 후 다른 어떤 멘토도 명미 킴만큼 그런 생각을 단호하게 강조한 사람은 없었다. 판독하기 어렵게 쓰는 것은 하나의 정치적 행동이었다. 그전에도 아시아인으로서 겪는 체험에 관해 쓰라는 독려를 받긴 했으나 여전히 백인 시인이 쓰는 식으로 썼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백인 시인을 흉내 내는 대신 백인 시인이 아시아 시인은 이럴 거라고 상상하며 흉내 내는 방식을 흉내 냈다. 킴이 내 시를 처음 읽고 말했다. "왜 다른 사람의 말투를 모방하죠?" 내가 말했다. "모르겠어요." 킴이 말했다. "언어에 관한 최초의 기억이 무엇이었나요? 그 기억을 시로 써보세요."

 

내 글과 덕 행위에서조차 이런 인상을 받을 때면 고작 이십대의 후기를 걷던 내가 스친 토큰의 길이 생각나곤 해서.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모국의 이름조차 빌릴 수 없던 환경에서 어떻게든 기를 쓰고 내 존재를 증명해야 했던. 내 언어와 시간과 자본과 육체와 체력을 모두 갈아넣은 이후에야 간신히 서양 기준의 평균 정도로 인정받던.

 

We lay under the misty mountains cold. 그 어둠 아래 너는 썩지도 않고 바스라지겠지. 다만 뱉지 못하고 치받힌 마음 한 점이 닳은 어금니 사이를 맴돌아서. 투둑투둑 흙알갱이가 굴러내릴 손등, 흐른 핏자욱이 검게 패일 손금, 때와 먼지가 엉켜 투박하게 흐트러질 손톱, 그럼에도 약속의 반지 하나 없이 담백하게 가라앉을 마디 굵은 손가락을 떠올리면 현기증이 나. -이미 죽은 너는 차게 묻혔는데, 나는 숨을 쉬며 뜨거운 하루를 걷고.

좋은 창작을 떠올리는 나는 매 순간 마법에 걸린 것처럼.

몹시도 키가 크고, 속삭이는 듯 이야기하는 더티 블론드들 내가 너무 좋아해서.

그날, 우리가 모두 어렸던 밤. 밤새도록 음악 듣고 책 읽고 서로 좋아하는 구문 읽어주고 좋아하는 장면만 유튜브로 찾아보고 비슷한 리듬을 건반으로 뚜당거리다 네게 박수를 받고 마음껏, 담배 피우고 싶다.

이 방종은 더이상 내 연륜의 것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내 선대와는 다른, 내가 아는 방식의 쌓임이 책과 영화였기 때문에. 요즘 아이들이 전혀 다른 방식을 가지고 있다하여 그를 탓할 이유가 있을까. 그들도 그들만의 쌓음과 통로가 있겠지.

북유럽에서도 딱히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나 운동을 했던 시절 비교적 근육이 잘 붙었던 체질을 상기해보면 조부가 내 양육에 어느 정도는 신경을 썼음을 짐작할수 있는데. 다만 그것이 일반적인 세부사항을 지닌 것이 아니었을뿐.

남자 종형제와 조부 아래서 들개처럼 자라며 그들의 옷과 물건을 물려받다보니 자연스레 나는 성별을 가릴 수 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언젠가 집을 방문한 조부의 지인이 툇마루에서 모리 마리의 수필을 읽던 나를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사내애를 저리 연하게 키워 어쩌려고? 그에 대한 조부의 답변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대화를 떠올릴 때면 조부는 내가 여자아이였기 때문에 더 놓고 키웠던 걸까, 하는 심상이 밀려들고.

 

유년에 부여되어야할 감정적 풍족함은 드문 환경이었지만 무언가를 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없어. 

너무 좋아해서 완결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일부러 스포일러도 찾아 보던 나 자신의 변태성을 떠올리곤 했지. 지금도 나는 점프 스퀘어를 비롯한 각종 뒤통수를 좋아하지 않아 미리 리뷰를 들여다보는 일이 잦지만 어렴풋이 그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해. 영원히 종결되지 않은, 내 호감마저 식지 않고 간직할 수 있는 현재 진행형의 마음.

지금은 덜하지만 굳이 이런저런 것들을 거론해가며 나를 좀 괴롭게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 마음이 좀 힘들었던 한편으로 매양 그럴 체력이 있다는 것에 -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내가 부러지길 바랐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창창히 부러져 그 발 아래 밟히길, 그 조각에 자신이 어떻게 되던 말던.

이제는 관심조차 두지 않게 되는 상대를 향해 떠올리게 되는 내 마음의 단절. 아닌 것 같은, 마치 처음 같은 이별.

얼마전 Tenet - 2020년의 여케를 다루는 방식은 여전히도 - 을 보고 가장 Memento와 흡사한 영화라는 생각을 했지. Nolan은 언제나 자신을 상상을, 글을 시각화하고 싶어함. 감독이라기엔 이론가에 가까운. 그렇게 보는 것에 집착하고 Cillian의 눈ㅋ에 그렇게 버튼 눌리는 것일지도. 

 

요즘 빠져있는 건 온라인 체스. 나는 장기를 둘 줄 모르고 남자는 바둑을 못 두는데 그나마 둘이 할 수 있는 게임 중 시간 소요가 덜 되는 걸 고르다 보니. 내가 봐도 내 체스는 패턴이 있어 최근 승률이 너무나 떨어진터라 이를 갈며 매일 직장을 오가는 동안 맹렬히 연습을. 

얼마전 기부금 관련으로 다녀온 학교. 앞으로는 초청권 좀 쥘 수 있겠네, 하고 웃자 조교를 하고 있는 동기가 이 코로나 시대에 공연? 하고 짚어주어;_;

 

Hello와 Bye 사이의 기나긴 궤적.

 

-격조했습니다. 모두들 안녕하실까요? 저는 여전히 일과 취미,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것들과 여전히 산재한 오래된 문제들에 골머리를 앓는 중이지만 그럼에도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모쪼록 무탈히, 새해 복도 좋은 일도 행복한 일상도 넘칠 만큼 받으시길 바랍니다. 정말이지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