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동료의 사직, 땀 한방울 닦을 수 없는 매일의 근무와 사흘 건너 검사와 재검.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도 생각하기도 어려운 환경의 나는 끊임없이 어떤 대사나 화면을 떠올리곤 하는데. 최근의 몰두는 The Little Drummer Girl과 Pugh.
-이름에 이토록이나 꽃을 간직한 배우라니.
청소는 커녕 샤워도 못하고 바닥에 늘어져 있다 혹시나 이 배우가 집에 찾아오면? 이라는 뻘한 상상으로 일어나 청소기를 돌렸다는 이야기에 웃어주는 모님께 힘을 얻는다. 일상적이고 엉뚱한 하나의 이야기가 누군가를 웃게 하는 기분은 늘 과하게 행복하지요.
극을 본다는 행위란 내가 상상한 배우의 이미지 위에 해당 배우가 그려낸 새로운 환상을 덧입히는 과정으로.
나는 지금도 무언가에 반하면 길을 걷거나 차도를 건너거나 무엇을 먹거나 잠이 들어야한다는 생각조차 잊을 만큼 그 마음만으로 하루를 살곤 해.
자신을 감싼 무엇을 벗는다는 곧 경의의 표현, 연인 앞에서 옷을 떨구는 이들의 마음도 다르진 않겠지.
향수를 뿌린다와 입는다의 차이.
봄이 오는 길목에서는 클래식보다 가벼운 것이 좋아 Carole King을 주로 듣고.
지금 내가 힘든 이유는 타인의 행, 불행이 내 삶과 너무 맞닿아 있어서일까. 지금까지 내가 안간힘을 쓰며 유지해왔던 타인의 감정과 나 사이의 안전거리가 없어, 내가 온전할 수 있는 거리감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 근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육체적 피로는 언제나 회복가변성이 높은 편이라.
이따금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주장한 하버마스가 지나치게 교조적, 엘리트주의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I stole the title not only because the words sounded right but because they seemed to sum up, in a nononsense way, all I have to tell you. Like many writers I have only this one “subject,” this one “area”: the act of writing. I can bring you no reports from any other front. I may have other interests: I am “interested,” for example, in marine biology, but I don't flatter myself that you would come out to hear me talk about it. I am not a scholar. I am not in the least an intellectual, which is not to say that when I hear the word “intellectual” I reach for my gun, but only to say that I do not think in abstracts. During the years when I was an undergraduate at Berkeley I tried, with a kind of hopeless lateadolescent energy, to buy some temporary visa into the world of ideas, to forge for myself a mind that could deal with the abstract.
Didion은 여전하구나.
나는 지금도 늘, 언제나, 항상 내가 과하게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비소유에 대한 창피함보다 소유에 대한 부끄러움이 큰 것은 팔 할이 보고 배운 교육의 탓.
-그 인물이 소수인종이거나 여성일 경우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사회적으로 여성과 관련이 깊다고 규정되어지는 극히 제한된 일부를 제외하고 여성 상관이 존재하는 경우 해당 집단 내에 여성 부하를 찾아보기 힘든 점이 이에 해당한다. 한 명의 여성을 이미 대표로 내세운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구성원은 집단 내 소수자 옹호가 이미 충족되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러한 상황에서 집단 내 여성 대표가 명예 남성화되어 있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십여 년전 한국의 여성노동 관련으로 썼던 글 중, 이후로 과연 어떤 것들이 바뀌었는지.
절대음감은 없지만 교육으로 학습된 정도 이상의 강박이 있으니 음이탈 정도는, 이라는 생각을 떠올리면서도 요즘은 유선 전화가 있는 집이 드무니 수화음 라를 중심으로 한 튜닝은 어려울 것 같기도.
차와 운전 모두 좋아하고 약간 노년 대비의 느낌이 있지만 특수를 딸까 말까 고민 중임에도 그다지 차를 구매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는데. 수도권이 워낙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기도 하고 사계가 이토록 명확한 나라에서 내가 차를 잘 건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려도 있고 시티백 정도는 기회가 되면 살까 하는 정도. 헌데 이따금 차도 없어? 라는 물음이 좋은 가방 하나도 없어? 애 하나도 없어? 라는 정상성과 재력 증명 사이의 질문틀로 확산되면 약간 생각에 잠기게 된다. 삶의 어느 단계에 달성해야 하는 당연함과 부당함 같은 것들, 아마도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영원히 성인成人이 되지 못할.
쨌든 요즘 고민하고 있는 혼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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