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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지만, 그 길게를 정리하다 스스로 지쳐버릴 것을 알기에; 기억해두고 싶은 것들 몇가지만.


지금까지의 미디어가 표방하는 여성의 우정이란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일방적 위로의 역할이거나, 질시와 선망을 숨긴 그럴싸한 겉포장, 혹은 처음부터 그런 것 따윈 없었다, 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기에 서로의 디딤과 성장의 발판이 되어주는 여성의 우정 - 저는 '써니'의 핍진함에도 아쉬움이 큰 터라 - 은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그런 거 없다, 는 선입관으로 공고하게도 자리한 작금입니다. 문화가 그 시대의 향유층을 닮아있는 것처럼 그 향유층, 즉 대중 또한 정도 이상 매스미디어가 표현하는 소위 대표 문화의 양양을 따르기 마련입니다. 우리들의 미디어가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한들 결국 한 시대와 그 향유층, 그리고 대중, 이 모든 인민을 아우르는 것 또한 매스미디어, 곧 보편적 문화로 대변되는 대중 매체이니까요.


크든 적든 문화에 이바지하는 이들이 그들의 창조, 혹은 창조물이 이를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도 이와 동일합니다. 모두가 어떻게든 손에 쥔 것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이해하고 나누어라, 는 지나치게 요원한 소망인 듯 하야 저는 언제부터인지 한국의 제작진들에 의해 기획된 영화를 대부분 피하게 되었습니다. 배우의 사생활 때문도, 홍보의 현장에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 누구 하나 거르지 못한 - 헛소리에 지쳐서도 아닙니다. 잠시나마 제가 몸 담았기에 알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중을 자신의 시선 이하로 폄하하고 낮추어보는, 제작진들의 내가 너희들, 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고압적 태도 - 드러내놓고 나눔이 아닌, 그저 보여주고 부러움을 사기 위해 감추어버리는 - 가 정말 짜증스럽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작진의 깔봄은 주로 쉽게도 지갑을 열어주는 여성 관객에 집중되었다고 보여집니다. 돈은 우리로부터 거두며 인정은 중년의 남성 평론가, 혹은 남성기를 표방하는 아마추어 씨네필들로부터 얻으려는 제작진들의 뻔한 태도에 질려버린 관객이 저 하나는 아니리라 확신하면서도 그들이 올려온 수많은 개가에는 저 또한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취향은 여럿이며 비난받지 않는 취향 또한 적이 드문 편이니까요. 저는 언제나 등장인물인 여성과 그를 대하는 관객을 동등하게 다루는 감독을 기다려왔습니다. 우리를 존중하면서도 이야기 속 여성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고, 이 모든 상황을 자신이 하고자하는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 그런 이야기꾼, 혹은 제작진 말입니다.


그리고 구심점은 이 작은 중국 영화에서 비롯됩니다. 언젠가 저는 남성화된 여성의 멋짐에 대해 거론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여성다운 것, 남성다운 것. 어떠한 방식이건 그 인물다운 방식이 가장 멋있어야 한다고 느끼는 제게 이 영화는 이야기 속 인물다운 것의 멋짐, 그 관계, 여성이 이룩하는 우정과 성장과 디딤, 남성 조연이 어떤 방식으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훔쳐가지 않고 조용히 물러날 수 있는지. 그리고 관객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반향까지 치밀하게 계산하여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어린 시절의 두 친구와 그 사이의 남성, 멋대로 엇갈리는 연정과 사모, 연민의 감정들. 고래부터 수없이 다루어졌던 삼각관계를 다시 한 번 불판 위에 올리며 감독은 무엇보다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인물들을 이야기합니다.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七月과 安生, 이 두 여성은 서로를, 그리고 연인의 감정을 수도 없이 의심하고 조율하고 감추고 드러내며 관계의 격렬함을 이야기하면서도 단 한 번도 서로를 아끼는, 서로의 앞길을 소망하고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자문하지 않습니다. 이토록 스스로를 자존하는 삼각관계의 여성들을 저는 만난 적이 있었던가요? 그렇기에 이들의 애정, 이들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한낱 이성 간의 사정을 짓누를 수 있을 만큼 순정하고, 또 고고해보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쩌면 거짓의, 어쩌면 진실일 후도 있는 뒤바뀐 인생에 대한 웹소설은 지금까지 차분히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관객들에 대한 배려입니다. 우리는 이런 결말과 내용을 지닌 영화를 이미 하나 알고 있지요. -Atonement. 허나 후자가 여성 화자를 중심으로 영화에 대한 모든 죄책감과 관객이 지고 가야할 무거움을 그 화자에게 몰아넣는 실로 대단한 여성 혐오에 대한 영화였다면, 전자인 七月与安生이 그려내는 결말은 이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극히 아꼈고,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생명을, 인생을 걸 수 있었던 두 사람 중 그저 남을 수 밖에 없던 사람이 떠난 사람에 대한 애정과 경애를 담아 그려낸, 그저 행복한, 행복해야만 하는 어느 인생의 이야기.  


늘 그렇듯 단점이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지나치게 상투적인 장치들과 과하게 멋을 부린 편집, 홀로 어색한 남자 조연의 연기와 관객들의 반응을 위해 필요 이상 드라마틱한 전개를 부여하는 연출의 과도함이 마음의 돌로 남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 모든 단점을 감내하고도 이 영화가 좋다, 고 할만큼 훌륭한 배우들과 흥미로운 연출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되뇌입니다. -이런 영화를 만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