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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세상에 가서 얘기해요. 우린 고통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겠지요. 그리고 아저씨와 나는 밝고 훌륭하고 꿈과 같은 삶을 보게 되겠지요. 그러면 우린 기쁨에 넘쳐서 미소를 지으며, 지금 우리의 불행을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드디어 우린 평온을 얻게 되겠지요.”

영화 그 자체보다 이 모든 연기를 견뎌낸 배우 - 관객에게 드러냄을 치중으로 평가한다면 연출은 대체적으로 좀 역겨웠음 - 들에 대한 놀라움이.

삶이란 죽음을 견디는 것, 이라 이야기했던 러시아 동료의 말을 오래 기억한다. 삶에서 이어지는 사람, 이라는 명사에 소스라쳤던 아홉이었거나 열 살이었던 어느 나날도.

이제는 모국어 외엔 많은 언어를 잃은 나는 몇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 일본어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를 망라하며 뚝딱거리기 일쑤라. 어느 것 하나 1에 도달하지 못한, 영원히 미달인 마음만으로 다시 공부를 계획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