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쯤이면 이런 얼굴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좋은 사람들 덕분에 거친 시기를 덜 긁히고 지날 수 있었지만. 근간 지난 과거를 토로하는 사람들의 일대기를 보며 새삼 인간은 동료의식과 내외의 경계가 없이는 살아남기를 거부하는 동물이라는 생각도 들고. 중고교 때의 외로움은 무리에서 떨어진 소외감에 가까웠기에 - 그룹을 짓지 않는다면 학교라는 공간 속 생활이 불편하기에 - 기를 쓰고 어떤 무리든 속하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시기에 접어들고서부터는 누군가의 곁에 있는 것이 오히려 불편해지곤 했다. 이 외로움도, 이 슬픔도 괴로움도 내가 감당해야 할 내 무게이기에.
에타가 없고 족보와 취업 전술에 신경쓰지 않는 시대의 대학생이었기에 누릴 수 있는 고독의 사치가 아니었나 싶고.
가장 독립적이어야 할 시기에 서로에게 기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 그 어려운 정황이 안타깝고.



너를 생각하며 자주 하루를 견딘다.
저도 모분 참 좋아하지만 운동할 때 죽을 만큼 포카리를 먹었기 때문에 자동연상으로 구토가; 그때 내 평생 다 신었다고 생각한 모 운동화를 지금도 있으면 간헐적으로 신고 있는 걸 보면 또 모르지요. 언젠가는 제 비위가 좀 더 강해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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