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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없이 마음이 무거워질 때면 아름다운 것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죄가 없다, 다만 무구한 언어로.

아름다움은 늘 하나면 충분하다.

유튜브도 페이스북도 틱톡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 우리는.

이걸로 돈을 번적도 있으니 일정 이상은 한다고 이야기해도 될것 같은데. 내 대사 쓰는 기술이 확 늘었던 것은 녹취 테잎을 받아쓰는 육 개월간의 아르바이트를 마친 이후였다. 평소 사람이 얼마나 지리멸렬하게 이야기하는지, 허나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집중할수 있는지를 교차로 느꼈던 순간. 대화하는 언어에 무엇보다 억양과 리듬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고.

누군가 MVP와 에이스의 차이를 물어서. 하나의 시합에서 활약하는 것과 일정 이상의 시합에서 상위의 행보를 보이는 사람, 이라는 정의를.

마시는 것에 질려 모 브랜드는 더이상 소비하지 않지만 열넷 열다섯의 육체를 지닌 내게 홍보라는 이름으로 다른 모 브랜드가 얼마나 좆같이 굴었는지. 임산부와 소수 인종에게 여전히 그러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굳이 있는걸 피하진 않지만 재차 소비할 생각은 전혀 없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동남에 큰 창을 드리우고 있어, 아침 볕에 눈을 뜰 때면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떠오르는 달을 정면으로 볼수 있다는 사실은 참 좋지.

가방과 옷, 보석을 물려주는 부모를 떠올리기 힘들다는 내 말에 엘라의 LP에 오가이가 얽힌 유년을 지난 사람이 할 말은 아니라는 모님의 답변에 이마를 짚었던. 맞아요, 저는 받은 걸 자주 잊고 없는 걸 흐리게 상상하네요.

어제, 나는 호숫가로 갔다. 지금 물은 너무 시커멓고, 너무 암담하다. 저녁마다, 잊혀진 나날이 물결에 실린다. 그것들은 마치 바다 항해를 떠나는 것처럼 지평선을 향해 멀어져갔다. 그러나 바다는 여기서 너무 멀다. 모든 것이 너무 멀다.
나는 곧 치료될 것이다. 무언가가 나의 내부나 공간 어딘가에서 부서질 것이다. 나는 미지의 깊은 곳을 향해 떠날 것이다. 대지 위에는 수확과 참을 수 없는 기다림과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이 있을 뿐이다.

어떤 내 이야기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그저 침묵하던 입술로, 당신의 귓바퀴에만 잠시 속삭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단어와 문장이 소리도 없이 사그라지는 것을 나는 아주 기쁘게 감내하겠지.

잠시 살았던 녹사평역 근처를 길게 둘러보고 돌아서던 길. 여전히 익숙한 영어책서점 외 내가 기억하던 모든 가게가 사라진 느낌이 기이했다. 이제 내 인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도시는 서울이 되었다.

남산골을 보고 국중박으로 향하던 길. 정말 더할 나위없이 좋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