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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이 상징을 대신하는 시대.

백치를 철도, 칼, 그림으로 대변하는 글을 읽다가 간접 효용의 가치가 거의 사라져버린 작금에 이미지는 오로지 과거의 유산으로만 그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을.

기억과 추억, 그에 얽힌 향수가 담긴.

누구나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세대에 사진과 박제, 소유를 이야기하는 것도 덧없어져버린.

근 십 년간 얼마나 많은 담론이 폐기되었는지.

헌치백를 읽었고 읭 하는 감상과 79년생 장애 작가가 써낸 이 글에 일본 우파 정치 노인네들 참 좋아했겠네 싶었으나. 글 자체보다는 이 글을 쓸 수 있는 기개와 여전한 생존, '돈이 있고 건강이 없으면 매우 정결한 인생이 됩니다'라는 문장이 무척 좋았다.

서경식씨를 추억하고.

내가 이 나이까지 살고 있다니, 라는 아연.

과일은 달아지고 디저트는 달지 않아지는 세계. 누구도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는 사회.

매 년초에는 쓰레기처럼 살곤 한다. 뭔가 결심하고 곧 포기하는 한갓진 과정에 대한 심술과 이렇게 살다 대충 스스로를 추스리기 시작하면 그럭저럭 연말 때까지는 바뀐 모습을 유지할 수 있어서. 올 해 적당한 결심은 하루 한번쯤은 집을 계단으로 오르기, 이고 오늘까지는 나쁘지 않은 결과를 유지하는 중.

연말과 연초는 일을 하며 남자와 보냈다. 마지막 해지는 사진, 첫날 해돋는 사진을 꼭 찍겠다는 남자에게 해는 내일도 뜨고 내일도 져. 날짜와 시간은 인간의 개념일 뿐인데 왜 환경에 감정 이입하는 거야? 단조롭게 묻자 너와 함께, 라는 의미 부여가 중요하다고 웃어주는 남자의 얼굴에 우리도 나이가 들었구나 싶었다.

내 장수와 번영을 바란 적 없지만, 그저 네가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

드물게 영화와 원작 모두 좋아하는.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 애를 쓰다 결국 자신의 본질에 굴복하고 아버지의 길을 따르는 뻔한 아들과 노래와 케릭터에 집중하다 황량하고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이 그다지 묘사되지 않은 아쉬움은 있었지만, 루시 그레이-캣니스 연관성과 추후 캐피톨에서 캣니스를 맞이하는 스노우의 심정을 이미 전작을 알고 있는 외부 관객의 입장으로 지켜보게 되는 양상을 잘 그렸다는 생각이. 영화의 엔딩에서 현재와 노년 스노우의 독백이 겹치는 것도 그렇고.

헝거게임 마지막 편에서 스노우를 겨누던 캣니스가 결국 활을 바꿔 다른 사람을 죽이고 스노우가 광소하다 군중한테 휩쓸리는 장면이 계속 떠올랐음. 스노우는 캣니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자신의 모든 과거와 죄가 이렇게 용감하고 빛나는 젊음의 형태로 나타난 것에 진짜 감탄하지 않았을까.

오라, 이 아름다운 죽음이여.